《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 김왕노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 《시작시인선》0126
그믐
그가 캄캄해져 돌아온다.
그의 몸에서 나는 어둠 냄새
오늘도 세상이 그렇게 어두웠어. 그래, 앞이 안 보였어
서로의 몸을 열고 들어가
서로를 밝히려 푸른 촛불로 타오른다.
그믐이 달밤보다 더 환해져 온다.
[감상]
자연은 현상을 드러냅니다만, 인간은 그 자연을 통해 이치를 깨닫습니다. 그믐은 가장 작아진 달의 모양이어서 가장 어두운 밤입니다. 이 시는 ‘그’의 등장과 그 상황을 맞서는 ‘서로’의 합일로 현상적 한계를 반전시킵니다. 사람과 사람이 융화되면서 빚어내는 그 자체가 발화점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3연의 ‘그’가 고백하는 두려움에서 알 수 있듯, 어쩌면 우리는 홀로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문학적 테두리 속에서 에로틱한 상상도 가능한 이 시에서, 삶을 관통하는 그 어떤 감(感)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