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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지 - 문정영

2011.01.18 14:01

윤성택 조회 수:924 추천:103


《잉크》/  문정영 (1997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 《시산맥 시인선》004

          무가지

        수없는 활자들이 매달린 감나무의 잎맥들은
        겨울로 들기 전에 읽어야한다
        그때 가지들은 자신이 새긴 여름을 펼치고
        행간을 좁히거나 문맥을 정리하는 중이다
        무가지는 가지를 달고 있으나 가벼워서
        매단 느낌이 없다
        그 빈 가지들마저 읽고 나면 훨씬 내 어깨가 가벼워진다
        살아갈수록 무성해지는 가지들은 잘라야만
        빛을 뿌리까지 흡수할 수 있다
        가로수로 심어놓은 감나무는 산감나무보다 먼저 잎을 떨군다
        간신히 홍시를 매달고 있는 우듬지는
        새들의 눈에 먼저 읽힌다
       고욤나무에 감나무의 가지를 접붙이는 날도
        공기가 가벼운 날을 택한다

        전철입구에서 나누어주는 무가지도 읽으면 가볍다


[감상]
무료로 나눠주는 무가지(無價紙)에서 착안, 시인만의 새로운 단어 ‘무(無)가지’가 등장합니다. ‘가지를 달고 있으나 가벼워서/ 매단 느낌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시를 가만히 읽다보면 진실과 상상을 혼재케 해 시적 성취를 이뤄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령, 가로수 감나무가 산감나무보다 먼저 잎을 떨꾼다 등이 진실이라면, 그 경계에서 ‘감나무의 잎맥들은/ 겨울로 들기 전에 읽어야한다’는 상상이 진실화 되는 것입니다. 홍시를 읽어낼 줄 아는 새들의 발견이 그러하듯, 이 시를 읽고 나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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