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하늘 위에 떠 있는 DJ에게 - 이영주

2011.03.03 13:10

윤성택 조회 수:1351 추천:137


《언니에게》/  이영주 (2000년 『문학동네』로 등단) / 《민음의 시》165

          하늘 위에 떠 있는 DJ에게

        새들이 멈추었을 때 서른이 되었다. 모든 풍경을 떼 내 나에게 엽서를 썼다.

        잔뜩 취한 서른의 내가 맞추지 못한 문의 구멍을 스무 살의 내가 맞춰 주는 순간. 첫날밤의 이불처럼 벽들이 하얗게 펄럭거렸다.

        저 하늘 위에 떠 있는 DJ를 보라. 그는 탈색되는 걸 사랑했고 몰래 잠드는 것도 좋아했다.

        부엉이 문신은 부드러운 네 왼쪽 가슴을 향해 날았다.

        검은 음표들은 전부 취해 있다. DJ는 환자가 누운 곳에서만 턴테이블을 돌렸다.
        
        세상의 모든 창문은 음표의 방향이 되었다.

        첫날밤은 귀가 먼 병원 의자에서 가장 고결한 사랑을 배운 DJ에게.


[감상]
자유롭고 꿈이 있었던 시절을 ‘새들’이었다고 비유해도 되겠습니다. 이제 생활이 생활을 지켜야하는 각박한 서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에게 엽서를 쓰듯 돌아보게 됩니다. 꿈 많았던 스무 살의 생각이 지금 현실의 무력함을 벗어나게 할 때, 문득 첫사랑이라든가 설레임이라든가 떠오르게 됩니다. 한때 음악다방의 ‘DJ’는 신청곡과 그 사연을 들려주는 근사한 목소리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만큼 그는 화자의 ‘첫’에 입김으로 서려 있습니다. 필경 그 상황이 ‘귀가 먼 병원 의자’ 였을지라도, 가만히 음악을 들려주었던 그의 턴테이블만은 아직도 가슴 속에서 돌고 있는 것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91 벚꽃 나무 주소 - 박해람 2015.05.11 3640 0
1190 흙의 건축 1 - 이향지 2015.05.11 1767 0
1189 마블링 - 권오영 2020.04.23 356 0
1188 얼음 이파리 - 손택수 2011.01.01 697 61
1187 바다의 등 - 차주일 2011.01.11 806 67
1186 와이셔츠 - 손순미 2011.01.10 751 69
1185 2011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2011.01.04 1054 71
1184 강변 여인숙 2 - 권혁웅 2011.01.06 727 72
1183 조난 - 윤의섭 2011.01.05 693 75
1182 그믐 - 김왕노 2011.01.13 782 75
1181 브래지어를 풀고 - 김나영 2011.01.12 1085 78
1180 가방 - 유미애 2011.01.04 711 80
1179 근황 - 정병근 2010.12.31 755 81
1178 빙점 - 하린 2011.01.15 940 81
1177 내 그림자 - 김형미 2011.01.14 1013 84
1176 병(病)에 대하여 - 여태천 2009.02.13 1110 94
1175 봄 - 고경숙 2009.02.17 1661 94
1174 따뜻한 마음 - 김행숙 2011.01.17 1624 95
1173 꽃 피는 시간 - 정끝별 2009.02.10 1484 97
1172 만남 - 김언 2010.01.15 1401 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