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키스의 암호》/ 김추인 (198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 《한국의 서정시》050
사하라의 연인
바람인 게지요
바람으로 해서 봉긋한 능선은 더욱 능선다워지고
그늘진 가슴 한쪽도 숨겼던 게지요
늦어서 온 바람 갈피갈피 사구를 품었던지
모래의 집에서 나온 저 사스락이는 언어들을 봐요
뭐라뭐라 속삭인 무늬들이 그냥 물결인데요
그가 떨구고 간 씨앗 몇 톨에
목숨이 내렸던지 어린 대궁이
바람의 시늉으로 제 몸을 휘저어도 보는데요
바람의 잔등에 업혀 본 적 있나요
모래폭풍, 토네이도로 날아오르면
바람의 어깨 너머로 구름밭이 뵈던 가요
사막이 사막으로 타들어가도
전갈을 품고 불개미를 키우는 것은요
바람의 혀가 훑고 간 저 상형의 곡선들
한생을 다 해도 못다 읽기 때문인 게지요
[감상]
이 시를 읽으니 사막은 남성성이라기보다 여성성이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모든 사물이 모래가 되어갑니다. 산과 들과 나무가 말라가고 바위가 부서지고 흙이 퇴색하는 그 과정을 생각해보면, 사막은 수많은 역사를 품고 있는 신비스러운 곳이겠다 싶습니다. 비밀이 많은 여인의 미묘한 표정처럼 그렇게 여기 사하라가 존재합니다. 시에 등장하는 목소리에 귀기울이다보면 어느새 사막이 진정 사막이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고요하게 바람이 훑고 가는 아득한 사막에 서서, 그렇게 나와 당신이 읽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