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티무카》/ 함성호 (1990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 《문학과지성 시인선》388
절정
돌보지 않아도 피어나는구나
봄비 내리는 오후
절음발이 비둘기들의 초췌
물오른 어린잎들의
칼날 같은 끝
도저히 피할 수 없다
아름다움은 어디로 가는가?
무화과의 달콤함
젖은 꽃잎의 부드러움
다시 보러갔던 그 산수유나무
글쎄,
또 한 시절이 가는구나
무슨 소용인가
몸은 습관만 알아보고
사랑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은 한곳에만 있네
젖을수록 더 붉고, 더 부드러운 꽃
너의 은밀함
덮쳐오는 물그림자처럼
치명적으로 하강한다
도저히 피할 수 없다
[감상]
절정에 이르는 풍경이 마음 속에서 짙어집니다. 바쁜 일상에서 이렇게 주위 자연의 풍경을 돌아보게 될 때면 정말 ‘또 한 시절이 가는구나’ 싶습니다. 글쎄 세상의 아름다움은 다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이 절정의 순간에 살아가는 우리는 또 어떤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문득 생각에 잠기게 하는 시입니다. 사랑이 사라지지 않고 꽃이 더 붉고 아름답듯, 지금 이 현실에서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너’의 느낌은 이렇게 도저히 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