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에도 뿌리가 있다/ 김명인 /『문학사상』(2002년 10월호)
흐르는 물에도 뿌리가 있다
흐르는 물에도 뿌리가 있다
강을 보면 안다, 저기 봐라, 긴 뿌리
골짜기 깊숙이 감춰놓고
줄기째, 줄기로만 꿈틀거려 여기 와 닿는.
내리는 비도 주룩주룩 낼미면 하늘의 실뿌리 같고
미루나무 숲길 듬성듬성한 저 강가 마을들
세상의 유서 깊은 곁뿌리지만
근본 모르는 망종(亡種)들처럼
우루루 쿠당탕 한밤의 집중호우 몰려들어
열댓 가구 옹기종기 마을 하나 깡그리
부숴놓고 떠나간 자리, 막돼먹은 저 홍수가
절개지의 사태(沙汰) 멋대로 끌고 와
문전옥답까지 온통 자갈밭으로 갈아엎은 건
순리도 치수도 모르는 어느 호로자식,
산의 잔뿌리 마구 잘라낸 난개발 탓이리.
오호, 허물어진 동구 앞 시멘트 다리 난간에 걸려서
흘러가지도 일어서지도 못해 길게 드러누운 저것,
고향의 길동무, 늙은 느티나무가 아니라
깊디깊었던 우리들 마음의 뿌리인 것을!
[감상]
시인은 끊임없이 세상을 재해석하는 것에 소임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에도 뿌리가 있다니, 라고 고개를 저었던 생각이 다 읽고 나면 그렇구나,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 시가 좋구나 싶습니다. 홍수가 나면 물길은 인위적으로 막아 놓았던 수로를 넘어가 옛날 자신들이 흘렀던 곳으로 찾아갑니다. 마치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처럼 막무가내가 됩니다. 그러니 땅의 지형은 물에 있어 운명일지도 모릅니다. 나를 막지 마세요, 내 오랜 영혼의 뿌리를 찾아 그대에게 넘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