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스민다는 것』/ 강미정/ 『시작』 시인선 15
모든 꽃은 흔들리며 뿌리로 간다
봄비를 받아내고 있는 작은 제비꽃의 흔들림은
꽃을 들여다보기 위해 쪼그리고 앉던
당신의 등처럼 외롭고 넓다는 것,
그러므로 꽃피어 흔들리는 세상 모든 꽃은
흔들리지 않으려고 땅을 움켜쥔
고단한 뿌리의 일그러진 얼굴이라는 것,
그러나 흔들림이여,
제 필생이 가진 파란만장의 중심을
꿰뚫고 흔들어야
흔들림이라 이름 붙일 수 있지 않겠는가
작은 제비꽃 한 포기가 필생을 흔들어
세상의 침묵 위에 얹어놓는
저 파열하는 자주빛 몸부림도
고단한 뿌리가 가졌던 일그러진 얼굴이었음을
뿌리가 더듬고 나간 그 처음의 길에서
모든 흔들림은 오직 제가 가진 경계의 폭으로
흔들린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시 제 필생을 흔들어 깨운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흔들리는 모든 꽃은 뿌리에게로 간다
맨 처음에게로 간다
[감상]
'꽃피어 흔들리는 세상 모든 꽃은/ 흔들리지 않으려고 땅을 움켜쥔/ 고단한 뿌리의 일그러진 얼굴이라는 것' 이 부분을 읽다가 시인의 직관에 놀라고 말았습니다. 꽃의 향기나 아름다움에 취해 있던 나에게 마치 힘껏 내리치는 채찍 같은 전율이랄까요. 번쩍 드는 정신을 추스르며 세상의 뿌리를 생각하게 합니다. 강미정 시인의 시는 맵고 쓴 세상살이에서 살어름이 살짝 스민 동치미처럼 얼얼한 감성을 느끼게 합니다. 모든 보이는 현상의 이면에서는 뿌리처럼 보이지 않는 정신이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하고자 시인은 온몸으로 상처의 얼개를 잡아내는 것은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