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자유낙하운동 - 권주열

2003.12.20 09:55

윤성택 조회 수:1084 추천:205

「자유낙하운동」/ 권주열 / 『시향』2003년 12월호 (지난 계절의 詩 다시보기 中)



          자유낙하운동



  공기의 저항 때문에 우울한 사람이 있다. 늘상 머리가 아픈
사람이 있다. 하지만 지구는 쉼없이 자전을 반복했고 의사는
허공에 달린 달을 처방했다.  그는 날마다 착 까라지는  약을
먹고 무중력을 꿈꾸다가 마침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정
말일까? 주공3차 옥상에 신발만 가지런히 벗어 놓은 과일 장
수 황씨. 언제나 명랑하던 그가, 그렇게 부산떨던 그가, 지방
신문  한 귀퉁이에 스며들다니.  그는 그날 사다리를 타고 올
라가 어쩌면 사과 같은 달을 땄을지도 모른다. 귤 같은 달을,
바나나 같은  초승달을 다-아 땄을지도 모른다.  구청직원의
호각소리에 시장바닥  이리저리 내몰리던  황씨의 리어카 그
날밤 와르르 별이 다 쏟아졌을지도,  달님이라 불리던 그 애,
드디어  상봉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형사들은 현장을  재차
오르내리며, s-떨어진 거리. t-떨어지기 시작한 때부터의 시
간. g-중력가속도. v-초기속도. 에 대해서만 정밀 검증중인.



[감상]
과일장수 황씨가 앓던 우울, 그리고 그의 죽음. 이 시는 황씨의 자살사건을 '달'과 결부시키면서 상상력을 뻗어간 시입니다. 관심 있게 들여다본 곳은 초반부 우울에서 사다리로 옮겨가는 연결고리입니다. 전혀 연결될 수 없는 별개의 것들을 '달'의 처방을 통해 전격화 시킨 것이 인상적입니다. 마지막 형사들의 수사가 말해주듯 한 사람의 죽음조차 과학의 수단으로 전락되고 마는 현실이, 우울한 것은 황씨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임을 보여줍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011 어도 여자 - 김윤배 2007.06.07 1083 138
» 자유낙하운동 - 권주열 2003.12.20 1084 205
1009 음암에서 서쪽 - 박주택 2002.09.24 1086 240
1008 움직이는 정물 - 김길나 2003.09.26 1086 183
1007 선명한 유령 - 조영석 2004.11.15 1086 165
1006 참붕어가 헤엄치는 골목 - 김윤희 2003.01.29 1087 196
1005 공중부양 - 박강우 2004.04.12 1087 225
1004 연두의 시제 - 김경주 [1] 2009.12.02 1087 119
1003 브래지어를 풀고 - 김나영 2011.01.12 1087 78
1002 처용암에서 1 - 김재홍 2003.09.24 1088 195
1001 프랑켄슈타인 - 김순선 2004.06.17 1088 174
1000 론강의 별밤, 테오에게 - 박진성 2002.05.07 1089 190
999 비닐하우스 밤기차 - 이승주 2011.02.21 1089 116
998 골목의 캐비넷 - 정병근 2003.10.27 1090 192
997 시,시,비,비 - 김민정 2010.01.16 1090 116
996 그의 바다는 아직 살아 있다 - 박현주 2002.10.29 1092 180
995 모든 꽃은 흔들리며 뿌리로 간다 - 강미정 2003.02.03 1092 169
994 구멍에 들다 - 길상호 2003.06.10 1092 154
993 구관조 - 전정아 2007.05.31 1092 166
992 이장 - 한승태 2002.06.18 1094 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