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대한 기억> / 진명주 /계간 《문학지평》으로 작품활동 시작 / 《시를사랑하는사람들》 2007년 5-6월호 中
꽃에 대한 기억
그리움이 시가 되는 시간이 있다 턱을 고이면 그리움은 추억의 돌기를 타고 구석구석 피돌기를 시작하여 모든 추억을 발그레 만든다 사계절 꽃집을 지나 서라벌 인쇄소를 지나 마른기침이 자작자작 터지는 안압지에 앉아 그리움의 꽃눈으로 물수제비를 뜬다 푸득 갈기를 세우며 피어나는 어리연 하나, 찻집 가득 순을 치는 꽃무늬 벽지처럼 사방연속무늬를 키우며 당신은 웃었다 서둘러 나오느라 허리끈을 채 묶지 못한 꽃송이가 프린팅 되어 있는 후란넷 치마, 찻잔에 남은 차를 꽃몽오리께에 쏟아 부으면 에취, 어린 꽃들은 진저리를 쳤다 싸리비가 세워진 마당에는 에둘러간 자전거 자국, 마루 위 던져진 편지봉투처럼 때 없이 피어난 기억들이 안간힘으로 벋어간다 채송화며 씨알 굵은 맨드라미도 따라 힘차게 몸을 올린다 우리 그리운 기억의 모퉁이를 지켜 선다 그리움이 담요처럼 펄럭거리는 시간, 문설주에 기대어 누우런 호박처럼 익어가는 그대
[감상]
경쾌하고 환한 시입니다. 마치 봄바람이 꽃에 대한 기억들을 아련하게 훑고 지나가듯 예쁘고 아기자기한 이미지가 풋풋하게 이어집니다. 사실 전문적인 시 쓰기에 있어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쓴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움> 자체가 강렬한 감상적 관념의 성격을 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를 시에 쓸 경우 최악의 수가 될 수도 있고, 최강의 수로 몰입을 가져다 줄 수도 있습니다. 이 시는 이러한 점을 염두라도 한 듯 과감하고 반복적으로 그리움이라는 실체를 밀고 갑니다. 마치 오월의 첫사랑 설레임 같은 걸까요. 시 속의 기억은 향기롭고 아름다워서 긴 호흡 끝에 박하향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