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꽃에 대한 기억 - 진명주

2007.05.23 13:28

윤성택 조회 수:1552 추천:163

<꽃에 대한 기억> / 진명주 /계간 《문학지평》으로 작품활동 시작 / 《시를사랑하는사람들》 2007년 5-6월호 中


  꽃에 대한 기억

  그리움이 시가 되는 시간이 있다 턱을 고이면 그리움은 추억의 돌기를 타고 구석구석 피돌기를 시작하여 모든 추억을 발그레 만든다 사계절 꽃집을 지나 서라벌 인쇄소를 지나 마른기침이 자작자작 터지는 안압지에 앉아 그리움의 꽃눈으로 물수제비를 뜬다 푸득 갈기를 세우며 피어나는 어리연 하나, 찻집 가득 순을 치는 꽃무늬 벽지처럼 사방연속무늬를 키우며 당신은 웃었다 서둘러 나오느라 허리끈을 채 묶지 못한 꽃송이가 프린팅 되어 있는 후란넷 치마, 찻잔에 남은 차를 꽃몽오리께에 쏟아 부으면 에취, 어린 꽃들은 진저리를 쳤다 싸리비가 세워진 마당에는 에둘러간 자전거 자국, 마루 위 던져진 편지봉투처럼 때 없이 피어난 기억들이 안간힘으로 벋어간다 채송화며 씨알 굵은 맨드라미도 따라 힘차게 몸을 올린다 우리 그리운 기억의 모퉁이를 지켜 선다 그리움이 담요처럼 펄럭거리는 시간, 문설주에 기대어 누우런 호박처럼 익어가는 그대


[감상]
경쾌하고 환한 시입니다. 마치 봄바람이 꽃에 대한 기억들을 아련하게 훑고 지나가듯 예쁘고 아기자기한 이미지가 풋풋하게 이어집니다. 사실 전문적인 시 쓰기에 있어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쓴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움> 자체가 강렬한 감상적 관념의 성격을 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를 시에 쓸 경우 최악의 수가 될 수도 있고, 최강의 수로 몰입을 가져다 줄 수도 있습니다. 이 시는 이러한 점을 염두라도 한 듯 과감하고 반복적으로 그리움이라는 실체를 밀고 갑니다. 마치 오월의 첫사랑 설레임 같은 걸까요. 시 속의 기억은 향기롭고 아름다워서 긴 호흡 끝에 박하향이 납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011 퍼즐 - 홍연옥 [1] 2004.03.02 1733 264
1010 사랑 - 이진우 2003.10.16 1733 164
1009 춤 - 진동영 2006.06.21 1730 243
1008 내 후생을 기억함 - 이성렬 2006.03.07 1730 220
1007 봄볕을 두드리다 - 고명자 2005.03.18 1725 185
1006 그림자 - 임강빈 [1] 2007.05.11 1724 174
1005 가장 환한 불꽃 - 유하 2001.09.17 1723 242
1004 사랑의 역사 - 이병률 [2] 2005.07.12 1719 191
1003 내 마음의 풍차 - 진수미 2001.08.16 1717 241
1002 하모니카 부는 참새 - 함기석 [2] 2006.09.06 1716 230
1001 해바라기 공장 - 이기인 [1] 2005.06.23 1715 230
1000 나에게 사랑이란 - 정일근 2001.08.27 1715 218
999 우리 모르는 사이 - 서지월 2003.10.15 1711 164
998 봄날 - 심재휘 2004.03.25 1710 203
997 벽돌이 올라가다 - 장정일 2001.04.25 1710 294
996 냉장고 소년 - 진수미 2005.09.15 1709 224
995 그곳에도 달빛이 닿았습니다 - 최재목 [2] 2004.06.02 1709 226
994 봄날의 산책 - 박순희 [2] 2007.01.27 1705 150
993 죽도록 사랑해서 - 김승희 2001.10.31 1703 212
992 옛 골목에서 - 강윤후 [1] 2004.10.26 1702 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