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구관조 - 전정아

2007.05.31 18:12

윤성택 조회 수:1092 추천:166

<구관조> / 전정아 (2006년 『문학·선』으로 등단) / 《우리시》 2006년 5월호


  구관조

  큰 산 하나가 있다 그는 기다림의 달인이다 몸이 시우쇠처럼 무거울 때 그를 찾는다 어린아이마냥 입을 크게 벌리고 끝말잇기 놀이를 한다 내 고인 말들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그는 마르지 않는 샘, 푸른 옷으로 갈아입는 내 안의 말들, 그를 만나기 위해선 몇 개의 언덕을 넘어야 한다 딱따구리의 노래와 만나곤 하는 참나무숲, 뿔 세운 낙엽송 아래를 지나 신발이 흙 두꺼비를 닮을 때쯤, 우렁우렁 마중 나온 그와 만난다

  나를 흡혈하던 유물론은 잠시, 안녕

  고갯마루에 올라 입을 연다 콘크리트를 입었던 말들이 우르르 달려나온다 해소 기침이 끊이지 않던 생의 가건물들, 나무가 된다 숲이 된다

  은빛 메아리로 불 켜진 산
  퍼드득, 내 안에 살고 있는 구관조
  싱싱한 말들이 날아오른다    


[감상]
도시는 그야말로 물질에 의해 존재하는 각박한 유물론적 세계입니다. 그러나 그곳을 벗어나 산과 숲으로 가고 있노라면 온갖 생명이 충만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는 그런 자연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말>을 통해 재해석하고 또 그것을 배움으로서 성찰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 시 <그>와의 소통은 중요한 소재인 <말>로 표현되고 구현됩니다. 아스팔트가 아닌 흙길을 걸었을 때의 모습을 <신발이 흙 두꺼비를 닮을 때>로 형상화한 부분이나, <내 안에 살고 있는 구관조>로 자연의 존재감을 표현한 부분이 새롭게 읽히는군요. 매끄러운 호흡, 관념을 관념답지 않게 구체화하는 시선이 좋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011 퍼즐 - 홍연옥 [1] 2004.03.02 1733 264
1010 사랑 - 이진우 2003.10.16 1733 164
1009 춤 - 진동영 2006.06.21 1730 243
1008 내 후생을 기억함 - 이성렬 2006.03.07 1730 220
1007 봄볕을 두드리다 - 고명자 2005.03.18 1725 185
1006 그림자 - 임강빈 [1] 2007.05.11 1724 174
1005 가장 환한 불꽃 - 유하 2001.09.17 1723 242
1004 사랑의 역사 - 이병률 [2] 2005.07.12 1719 191
1003 내 마음의 풍차 - 진수미 2001.08.16 1717 241
1002 하모니카 부는 참새 - 함기석 [2] 2006.09.06 1716 230
1001 해바라기 공장 - 이기인 [1] 2005.06.23 1715 230
1000 나에게 사랑이란 - 정일근 2001.08.27 1715 218
999 우리 모르는 사이 - 서지월 2003.10.15 1711 164
998 봄날 - 심재휘 2004.03.25 1710 203
997 벽돌이 올라가다 - 장정일 2001.04.25 1710 294
996 냉장고 소년 - 진수미 2005.09.15 1709 224
995 그곳에도 달빛이 닿았습니다 - 최재목 [2] 2004.06.02 1709 226
994 봄날의 산책 - 박순희 [2] 2007.01.27 1705 150
993 죽도록 사랑해서 - 김승희 2001.10.31 1703 212
992 옛 골목에서 - 강윤후 [1] 2004.10.26 1702 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