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코르크 마개가 열릴 때까지》/ 진수미/ 《문학동네》시인선 (근간)
냉장고 소년
이 속은 환한데? 이곳은 환한 내부.
멀리 안 가도 되겠어, 엄마
어떠한 환속도 우릴 기다리지 않고,
이곳은 진짜로 환하군. 강보에 싼 아가들이 유골로 박혀
있군.
신문지로 둘둘 말거나 쇼핑백에
대충 접어 넣지 말아요. 아기는
버리실 때에도 예쁘게,
조심하거라. 잘못 짚으면 와르르 무너질 거야.
이 방엔 산발한 어머니가 참 많이도 매달렸군.
배곯은 아기울음은 나를 흥분시키지,
유두 끝에 물큰 침이 돌지.
콩들이 쏟아진다. 얼어서 뭉쳤던 모조 눈알도 쏟아진다.
소년은 제 불알을 놀듯 어미의 젖을 잡아당긴다. 찬란한
오색 젖이 뿜어지고 흰개미들이 얼른 길을 덮는다. 나는
송사리야. 물살에 머릴 박고 꼬리를 살래살래 치며 엄마,
이곳은 납골당이지? 나는 부장품인가? 엄마, 이곳은 늘
환하고 언제나 곡소리를 모방한 음악이 흐르는군. 곡을
따라 내 유두엔 어느새 머리칼이 자랐군.
[감상]
영안실 시체보관용 냉장고에는 죽은 이들이 누워 있습니다. 그리고 늦은 밤 냉장고의 온도가 올라가면 자동시작기(모터)가 작동하고, 콤푸레샤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마치 누군가 속삭이는 듯한 <웅얼웅얼…>소리 같은. 이 시에는 죽은 아이와 엄마, 그리고 시 속의 화자가 빙의(憑依)현상처럼 한데 뒤엉켜 목소리를 내는 듯한 서늘함이 있습니다. 끔찍하거나 기괴한 풍경너머 정자가 연상되는 <송사리>도 등장하고요. 죽은 사람의 몸에도 단백질로 인해 손톱이나 머리카락이 자란다고 합니다. <나는 부장품인가?> 몸은 죽었으나 의식이 살아 있는 냉장고 속 풍경, 어떠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