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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 박상수

2004.06.03 22:26

윤성택 조회 수:1590 추천:230

「18세」/ 박상수(《동서문학》2000년 등단)/ 《시작》2004년 여름호

        
18세

어떤 날은 종일 스탠드에 앉아 운동부 애들이 빳다 맞는 것을 보았다 옥상으
로 올라가는 계단은 막혀 있었다 철문 앞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담배
가 떨어지면 문 밖의 바람 소릴 생각했다  나비로 핀을 꽂은  숏 커트의 여자
애가 머리를 기댔다 사라졌다

등나무 벤치, 오고가는 말들에 파묻혀 있으면 구름이 내려와 어지러웠다  땅
에 발을 딛고 잎을 피워올리는 애들이 많았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엔 언
제나 부서진 걸상과 깨진 창문틀,  폐지가 있었고 믿는 건  세계의 일부가 가
라앉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바람이 심한 날에는  코스모스도 괜찮았고  다릴
떠는 여자애도 좋았다

경박하게 나는, 옥상에 대해 생각했다 바람 빠진 배구공과 줄이 끊어진 고무
동력기,  항상 고여 있을 썩은 물,  나는 히히덕거리며 옥상으로 돌을 던졌다
아는 사람이 지나가면 강아지 흉내를 내었다  자꾸만  바람에 흔들리는 창문
의 소리가 들렸다


[감상]
열여덟 살, 빨리 어른이 되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최고의 희망이라고 여겼던 때가 생각납니다. 이 시는 그런 사춘기 소년의 심리가 쓸쓸한 옥상의 정경과 함께 잔잔하게 배어있습니다. 특히 ‘아는 사람이 지나가면 강아지 흉내를 내었다’의 대목에서 끄덕이게 되는데요, 시적 대상의 동물화가 18세라는 개연성과 맞물려 독특한 느낌을 주는군요. 참신함이 쏠쏠한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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