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꽃바구니》/ 휘민/ 《서정시학》시인선
장독대에 내리는 저녁
한 아이가 있었네
숨바꼭질을 하면 언제나
술래가 가장 늦게 찾는 아이
몰래 숨어든 집
장독대에서
간장 항아리에 들어온
꼭지 푸른 오이처럼
해묵은 기억을 엿듣던 아이
세월은 이제
하나 둘 잊혀진 이름들을 부르며
내 앞의 어둠을 앞질러 가고
어머니처럼 둥근 항아리는 내게 말하네
얘야, 이제 그만 일어나렴
너는 너무 오랫동안 숨어 있었단다
[감상]
숨바꼭질을 통해 인생의 의미라든가, 시간의 흐름을 되돌아보게 하는 시입니다. 끝내 술래는 아이를 찾지 못하고 놀이도 끝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간 그 저녁, 이 시는 그 쓸쓸한 정경을 포착해냅니다. 뭐랄까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느낌의 표면에는 숨어 있음에서 오는 희열이지만, 그 안쪽에는 고립된 외로움 같은 것이 있겠지요. 어쩌면 우리는 숨바꼭질처럼 <나>라는 허상 뒤에 숨어서 진실이라는 술래를 기다리는 존재들일지 모릅니다. 2001년 새해 벽두 새로운 것들이 판을 치는 그 바닥에, 버려지고 낡은 <개신고물상>을 경향신문에 내놓은 그 시인. 낮은 곳을 살피는 따뜻한 눈을 가진 그 시인의 첫 시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