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기름주유소>/ 고경숙/ 《우이시》 2007년 2월호
꽃기름주유소
얼었다 녹은 봄날 산벼랑
백설기처럼 푸슬거리는
산 옆구리를 쥐고 달린다
포장을 마다하고
일부러 견고하지 않은 길은
덜컹이며 바람을 타다
오르막에서 멈춘다
계기판에 불이 들어온 지 한참,
고갯마루 작은 주유소엔
대형 탱크로리에서 꽃무더기를
옮겨 담고 있다
고객님 얼마나 넣어드릴까요?
나는
L당 가격표를 보는 대신 꽃향기를 맡아본다
들꽃유로 가득이요
서둘러 주유기를 꽂고 뒤차로 간다
내 뒤 봉고는 콩기름을 주문한다
주유원이 탁탁 엉덩이를 치면
꽃향기를 내뿜으며 부릉거린다
카드전표로 가져온 꽝꽝나뭇가지에
손도장 꾹 눌러주고
출발!
손님, 내리막길은 무동력이구요,
봄은 비과세입니다.
[감상]
정유사도 유가를 담합하는 요즘입니다. 저 들과 산의 꽃과 나무가 담합하여 봄을 맞듯, 이 시를 읽다보면 에너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로 상쾌해집니다. 물질문명 법칙 중에 엔트로피 법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모든 물질은 질서에서 무질서의 형태로 변해간다는 것인데, 에너지로 치자면 에너지 사용량이 많아질수록 생활은 윤택해지지만 이에 대한 부작용은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로 직결된다는 것입니다. 이 시는 이러한 물질문명을 일시에 뒤집어 줌으로서 환경과 생태에 대한 문제를 깨닫게 합니다. 자동차 배기가스조차 <꽃향기를 내뿜으며 부릉거린다>는 발상에서 우리는, 자연의 순리와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