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류장에서 또 한 소절>/ 최갑수/ 《문학동네》 2007년 봄호
정류장에서 또 한 소절
숲속길마을 7단지 앞 정류장은 여관처럼 서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슬픈 자세다
버스가 끼륵 ─ 하고 섰다
작은 새 한 마리가 내렸다
대낮인데도 눈물 자국이 얼굴에 번져 있다
자기도 모르게 밀려온 배도 한 척 있다
버스가 가고
간이의자에 앉아서 햇빛과 그림자를 만지작거린다
이 세상이 감귤 한 봉지만큼만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귓속에서 강물 소리가 흘러나와 개구리처럼 오골댔다
누구를 보내고 맞는 것이 아니라서 슬리퍼를 끌고 정류장에 갔던 것이다
베란다에 내놓은 선인장이 말랐고 그것을 오늘은 보았을 따름이다
[감상]
정류장은 버스나 택시 따위가 사람을 태우거나 내려 주기 위하여 머무르는 일정한 장소이지요. 그러니까 목적과 방향, 흐름의 곁인 셈입니다. 아마도 정류장에서 적당한 유속을 지닌 <강물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이러한 풍경 때문일 것입니다. 또 정류장에서의 기다림(시간성)을 확장시킨다면 여행객이 잠시 하룻밤을 머무는 <여관>과 같겠다 싶습니다. 선인장은 혹독한 사막처럼 물을 애타게 기다리다 말라가고, 시인은 정류장에 와서 <눈물>과 <강물>을 깨닫습니다. 다만 <슬픈 자세>로 시가 그렇게 <자기도 모르게 밀려온 배 한 척>으로 정차해 있듯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