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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를 등에 지다 - 김산

2007.03.03 13:09

윤성택 조회 수:1327 추천:151

<안드로메다를 등에 지다>/ 김산/ 2007년 《시인세계》로 등단


  안드로메다를 등에 지다

  백혈병. 그날 이후 여자는 한 움큼씩 지구 밖으로 밀려났네. 집에 가고 싶어요. 내 등에 업혀 가느다란 팔목을 시계추처럼 늘어뜨리던 여자. 서편으로 지는 스무살 묽은 내력, 그 뒤안으로 몇 올 남지 않은 여자의 머리칼이 내 입속에서 곱씹히고 있었네. 하느님! 부은 발을 손처럼 비비던 그 흔한 아멘 소리 왜, 밤이면 이리도 조용한 것일까요? 붉게 충혈된 도심의 십자가 사이로 불꺼진 옥탑방, 셀로판지처럼 흔들릴 때면 여자는 힘을 주어 깍지를 끼곤 했네. 들리지도 않는 바람소리에 가는 숨소리로 화답하던 여자를, 나는 알고 있네. 아직도 여자를 집에 데려다 주지 못한 죄로 지구 밖의 별들을 발로 묻고 있는 나는, 오늘도 안드로메다를 등에 지고 오래전 풍장(風葬)의 거리를 걷고 또 걸었네. 여자의 살바람이 불어오네. 달보다 먼 저기 어디쯤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있는 여자. 바람처럼 손짓하는 소리가, 자꾸만 귓불을 당기고 있네. 나,

더듬이를 잃은 귀뚜리처럼 밤새 가로등 밑을 절룩거렸네.


[감상]
언젠가 <지구를 지켜라>란 영화를 본 적 있습니다. 거기에서 안드로메다 우주인은 머리카락이 텔레파시를 주고받는 교신 안테나이라는 설정이 나옵니다. 그 당시 이 황당한 얘기는 그래도 디카프리오가 외계인이라는 말보다 설득력이 있었던 셈인데요. 이 시를 읽다보면 그것과 별개로 백혈병을 앓는 <여자>의 연민이 아련하고 쓸쓸하게 다가옵니다. 어쩌면 머리카락이 빠진 창백한 얼굴, 그리고 지구의 중력에 도무지 적응하지 못하는 어지러움은 시인의 상상력만큼이나 낯설고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외계에 끊임없이 교신을 보내는 <옥탑방> 여자의 믿음이 안쓰러워, 등에 업고 어디로든 데려다주고 싶은 화자를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이 시의 서사에 매료됩니다. 구원에 묵묵부답인 하느님은 너무 멀리 있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현실의 방황은 <더듬이를 잃은 귀뚜리>로 표현된, 인상적인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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