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껍데기>/ 김원경/ 《시인시각》 2007년 봄호
소라껍데기
달빛에 널어놓은 파도를 목까지 끌어당겨 바다가 써 놓은 즉흥곡을 따라 부르며 이 밤 이리저리 뒤척일지 몰라 지금까지는 우리들의 계절이 아니었기에 뭉개진 땅을 찾아 점자처럼 올라온 별들을 꾹꾹 누르며 키킥 난 달아날지도 몰라 초인종소리에 뒤늦게 밖으로 뛰쳐나온 외마디 음성 목탄으로 덧칠한 당신의 대문에 지문을 남긴 이후 자꾸만 뭍으로 올라오는 인어공주의 묘비, 밀물이 발목을 감으며 리드미컬하게 올라오는 나의 무덤 그 속에서 의족들이 삐걱거리며 수천 갈래의 뼈마디를 움직여 한 통의 편지를 쓴다 돌돌말린 성대가 돛을 달고 춤을 추고 바람은 서둘러 어둠의 체인을 풀어주었다 진열장 속에서 자기 파산 신고장을 붙인 여자가 드디어 소리 내어 운다 집이 통째로 뒤꿈치를 들고 둥둥,
[감상]
소라껍데기에 귀를 대고 들어보면 파도소리가 들립니다. 작은 소리라도 소라껍데기 안에서 공명을 일으켜 진동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시는 이러한 소라껍데기에서의 소리처럼 상상력이 증폭되어 있습니다. 큰 틀에서의 <집>이라는 상징, 그리고 살아있는 소라의 움직임이 <리드미컬하게> 포착됩니다. 소라는 때가 되면 껍질을 남긴 채 몸은 사라지고 말겠지요. 그렇게 <파산>이 이행되고나면 새로운 권리를 가진 소라게가 입주를 하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