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울음>/ 도종환/ 《시작》 2007년 봄호
고양이 울음
겨울밤 창가에서 고양이가 운다
퍼붓는 눈발
시간은 가만가만 얼어붙으며
어둠의 차고 딱딱한 계단을 천천히 걸어 내려가는데
고양이는 운다
몸이 아래로부터 뜨거워져 올 때마다
고양이는 몸 구석구석을 쥐어짜며 운다
고층아파트에 갇혀서
먹이에 갇혀서
고양이는 운다 끈처럼 길게
아래로 내려가는 고양이 울음소리
우리도 저렇게 끈을 내리며
누군가를 밤새도록 찾은 적이 있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따듯하고 포근하게 변하는 음성도
본래 울음소리였는지 모른다
우리들의 화려한 의상도 세련되게 바꿔 입은
울음소리인지 모른다
여러 가지 모양과 소리로 우리도 울고 있는 것이다
겨울밤 베란다에서 고양이가 운다
암내가 거의 다 빠져나간 할머니가
어둠 속에서 귀를 편 채
그 소리를 듣고 있다
[감상]
고층아파트 계단을 아주 긴 식물의 물관으로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계단은 끝없이 층층을 올라 맨 위층까지 공명으로 뚫려있기 때문일까요. 이 시 고양이 울음소리는 계단을 타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감각적으로 형상화됩니다. 특히 보이지 않는 소리의 영역을 <끈>으로 나타낸 것과, <울음>의 근원을 훑는 직관은 시인만의 연륜이겠다 싶습니다. 어쩌면 <울음>은 타인에게 전달되는 고백의 형식이며, 그 형식을 빌려 자신을 드러내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눈 내리는 겨울 밤, 어느덧 늙어버린 할미처럼 스스로를 깨닫고 <우리도 울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