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고양이 울음 - 도종환

2007.03.14 14:35

윤성택 조회 수:1337 추천:167

<고양이 울음>/ 도종환/ 《시작》 2007년 봄호


        고양이 울음

        겨울밤 창가에서 고양이가 운다
        퍼붓는 눈발
        시간은 가만가만 얼어붙으며
        어둠의 차고 딱딱한 계단을 천천히 걸어 내려가는데
        고양이는 운다
        몸이 아래로부터 뜨거워져 올 때마다
        고양이는 몸 구석구석을 쥐어짜며 운다
        고층아파트에 갇혀서
        먹이에 갇혀서
        고양이는 운다 끈처럼 길게
        아래로 내려가는 고양이 울음소리
        우리도 저렇게 끈을 내리며
        누군가를 밤새도록 찾은 적이 있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따듯하고 포근하게 변하는 음성도
        본래 울음소리였는지 모른다
        우리들의 화려한 의상도 세련되게 바꿔 입은
        울음소리인지 모른다
        여러 가지 모양과 소리로 우리도 울고 있는 것이다
        겨울밤 베란다에서 고양이가 운다
        암내가 거의 다 빠져나간 할머니가
        어둠 속에서 귀를 편 채
        그 소리를 듣고 있다
                
        
[감상]
고층아파트 계단을 아주 긴 식물의 물관으로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계단은 끝없이 층층을 올라 맨 위층까지 공명으로 뚫려있기 때문일까요. 이 시 고양이 울음소리는 계단을 타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감각적으로 형상화됩니다. 특히 보이지 않는 소리의 영역을 <끈>으로 나타낸 것과, <울음>의 근원을 훑는 직관은 시인만의 연륜이겠다 싶습니다. 어쩌면 <울음>은 타인에게 전달되는 고백의 형식이며, 그 형식을 빌려 자신을 드러내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눈 내리는 겨울 밤, 어느덧 늙어버린 할미처럼 스스로를 깨닫고 <우리도 울고 있는 것>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91 종이호랑이 - 박지웅 2006.04.10 1656 226
990 밀실의 역사 - 권혁웅 2005.10.13 1446 226
989 푸른 방 - 문성해 2005.10.01 2209 226
988 나쁜 피 - 이영주 2005.09.02 1476 226
987 탐구생활 - 박후기 [1] 2005.08.24 1530 226
986 가을, 도서관에서 - 남궁명 [2] 2004.10.14 1609 226
985 그곳에도 달빛이 닿았습니다 - 최재목 [2] 2004.06.02 1709 226
984 철봉은 힘이 세다 - 박후기 [7] 2004.03.17 1446 226
983 고래는 울지 않는다 - 마경덕 [1] 2004.02.20 1609 226
982 이장 - 한승태 2002.06.18 1094 226
981 점안식 하는 날 - 최명란 [1] 2006.11.28 1151 225
980 불법체류자들 - 박후기 [1] 2006.10.30 1663 225
979 감자를 캐며 - 송은숙 2006.10.16 1700 225
978 뺨 - 함순례 [2] 2006.07.25 1854 225
977 공중부양 - 박강우 2004.04.12 1087 225
976 옹이 - 이수정 2003.12.03 1249 225
975 달팽이가 지나간 길은 축축하다 - 박성우 2002.09.27 1268 225
974 이별 - 안성호 [2] 2006.10.23 1959 224
973 겨울 그림자 - 임동윤 [2] 2005.12.07 2070 224
972 월남 이발관 - 안시아 2005.11.17 1459 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