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념은 울창하다>/ 김연숙/ 《시와정신》 2007년 봄호
잡념은 울창하다
잡념은 울창하다
투명한 젤리 속을 밀어나가듯
무겁게 헤쳐 가는 소리들의 숲
쉬지 않고 연주하는 전속악단 거느리고
지금은 슈퍼마켓 가는 길
풀리지 않고 이어지는
무궁동(無窮動)의 카덴짜
은행까지 전철까지 꿈속에까지
빙빙 감싸 몰고 다니는
제 운명의 비닐 막
잡념은 울창하다
그 장엄한 불협화음 속으로
유령처럼 꿈처럼
정오의 거리를 걸어가는
저 유리미궁의 여왕
[감상]
관념을 구체화하는 솜씨가 탁월한 시입니다. 잡념은 그야말로 여러 가지 잡스러운 생각이지요. 그런데 이 잡념은 주위 소리에 의해 방향성을 갖기도 하여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생각을 몰아갑니다. <잡념은 울창하다> 제목에서부터 압도하는 은유의 힘이 느껴집니다. 사실 우리는 엄밀히 말해 <투명한 젤리 속>에 유영하듯 살고 있습니다. 공기는 그야말로 질소 78%, 산소 21%, 그밖에 이산화탄소, 아르곤 등이 섞여 함량된 일종의 젤리와 같은 제품입니다. 길을 걸으면서 끊임없이 연상되고 사라지고 다시 만들어지는 잡스런 생각은 누구나 겪는 일상입니다만, 시인은 이 지점에 음악을 입히고 빽빽하게 우거진 공간감을 채워 넣습니다.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며 <유리미궁>을 발견한 것이지요.
* 무궁동 : [명사]<음악>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속도로 진행되는 기악곡. 종지형(終止形)이 없는 특수한 형식으로, 속도가 아주 빠르다.
**카덴짜 : 협주곡에서 독주 연주자의 기량을 맘껏 뽐낼 수 있도록 마련된 악곡의 한 부분. 즉 협주곡에서의 독주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