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의 힘> / 김봉식/ 《서시》 2007년 봄호 신인당선작 中
녹의 힘
금 간 외벽 틈 사이
녹슨 철근을 본다
한 生의 견고한 척추였을 저것,
흔들리는 지상의 집 한 채를
천천히 내려놓고 있다
흘러내리는 녹물…
집을 떠받치던 무게 중심이
지하로 스며든다
지금, 녹은
제 몸을 망치로 세차게 두들기던
쓸쓸했던 나날과
지옥처럼 활활 불타오르던
용광로의 추억을 지나
흑암의 머나먼 광맥 속으로
회귀하는 중이다
또 새벽이 오면,
녹은 제 연원을 다시 거슬러 올라와
지상의 허물어진 제 몸뚱이를
굳건히 세울 것이다
봄베이의 낯선 거리,
그늘에 앉아 담배를 태우는 나에게
한쪽 뒷다리를 잃은 개가
절룩이며 안겨온다
그의 두 눈에서도
붉은 녹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다
[감상]
<녹>은 쇠붙이의 표면에 산화되어 생기는 붉거나 검거나 푸른색의 물질입니다. 이 시는 이런 물리적 현상을 주목하여 철의 본질을 투시하는 직관이 예리합니다. <봄베이>는 지금은 뭄바이라고 부르는 인도의 한 도시이지요.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다보니 도시는 혼잡하고 호화로운 건물이 있는 반면 그 뒷골목에는 공동 빨래터나 거지들이 공존한다고 합니다. 이 모든 삶들이 한데 용광로처럼 섞여 도시가 만들어지고 허물어지는 것이겠지요. 시적 공간을 이렇게 타국의 풍경으로 확장시킨 까닭에 시적 환기가 신선하다고 할까요. 그 낯섦이 자연스럽게 개의 <두 눈에서도/ 붉은 녹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다>의 강렬한 이미지로 승화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