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그> / 이용임 (200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 《현대문학》 2007년 4월호
스모그
연기로 가득 찬 창문 안에서
발목에 매달린 그림자가 서성거린다
붉은 후미등이 줄지어 사라진다
생머리 나비핀 엉킨 머리카락 질끈 묶어 흔들리는
뒤통수들이 희미해진다
자박, 자박, 자박, 엎디어 손톱으로 기어오는 발소리
벽에 부딪쳐 되돌아간다
얼굴까지 이불을 뒤집어쓴 지붕이 누운 아래
입을 벌려 마른 혀끝을 보이는 창문들
도시 외곽 공장지대의 굴뚝을 향해 난 길을 따라
여자 하나 자전거를 타고 간다
은빛 바퀴살이 치르륵거린다
누군가 다급한 손바닥으로 탕, 탕 두드린다
사라진 길 위에서
[감상]
공장에서 내뿜는 연기가 안개에 섞인 것이 스모그이지요. 이 시는 스모그가 짙게 깔린 풍경을 기괴하게 풀어냅니다. 마치 시각이 단절된 사람이 겪는 공포와 같다고 할까요. 가령 <엎디어 손톱으로 기어오는 발소리>에서는 흰 소복을 입고 TV에서 기어나오는 듯한 공포영화가 상상되고, <다급한 손바닥으로 탕, 탕 두드린다>에서는 언제 후려칠지 모를 폭력이 암시됩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시각이 약해질수록 청각은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감하게 생략하거나 한 단면만 부각시킨 그림처럼 그로테스크하게 여겨지는 것도 그런 연유이겠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