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미소를 바른다> / 최원준/ 《문학과사회》 2007년 봄호, 신인당선작 中
그녀는 미소를 바른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며 그녀는 투명하게 포장된다 지하철역 가
까운 테이크아웃 커피점으로 들어가 유니폼을 입고 초록 앞치마를
두른다 유통기한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미소를 얼굴에 바르며 라테
모카 카푸치노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작은 포장들을 건넨다
눈에 익은 포장이 그녀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컨베이어 벨트
에 실리며 마주친 적이 있었던가 미간을 살짝 찡그리다 재빨리 그
녀는 미소를 얼굴에 바른다 비슷한 포장이 너무 많아, 입구까지 흘
러나온 내용물을 안으로 담으며 그녀는 익숙한 동작으로 작은 포장
을 건넨다
커다란 포장이 그녀에게 돈을 주고 작은 포장을 집는다 가끔 까다
로운 포장이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 때도 있지만, 대체로 포장들은
온순하다 포장의 생명은 내용물을 드러내지 않는 데 있는 것이다
[감상]
미소란 흔히 상대에 대한 호감의 반응입니다. 그래서 미소를 통해 타인을 마음을 인식하고 또 거기에서 따뜻한 정이 오갑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그 의미를 과감하게 비틀어놓습니다. 립스틱처럼 <미소를 바른다>는 얼굴의 표정이 얼마나 상품화 되었는가를 보여줍니다. 이제 인간의 관계는 <컨베이어 벨트에 실리며 마주친 적이 있었던가>에서처럼 도시문명 속 공산품이 되어 유통의 개념만 존재하고, 모두 스스로 <포장>이 되어 거래될 따름입니다. 좀체 속을 알 수 없게 해야 살아갈 수 있는 요즘 세상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스스로를 각박하게 살아왔는가를 깨닫게 합니다. 지하철역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에서 무관심하게 흘러가는 일상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한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