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그녀는 미소를 바른다 - 최원준

2007.04.04 17:29

윤성택 조회 수:1481 추천:161

<그녀는 미소를 바른다> / 최원준/ 《문학과사회》 2007년 봄호, 신인당선작 中


  그녀는 미소를 바른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며 그녀는 투명하게 포장된다 지하철역 가
까운 테이크아웃 커피점으로 들어가  유니폼을 입고 초록 앞치마를
두른다 유통기한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미소를 얼굴에 바르며 라테
모카 카푸치노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작은 포장들을 건넨다

  눈에 익은 포장이 그녀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컨베이어 벨트
에 실리며 마주친 적이 있었던가  미간을 살짝 찡그리다  재빨리 그
녀는 미소를 얼굴에 바른다  비슷한 포장이 너무 많아, 입구까지 흘
러나온 내용물을 안으로 담으며 그녀는 익숙한 동작으로 작은 포장
을 건넨다

  커다란 포장이 그녀에게 돈을 주고 작은 포장을 집는다 가끔 까다
로운  포장이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 때도 있지만,  대체로 포장들은
온순하다 포장의 생명은 내용물을 드러내지 않는 데 있는 것이다


[감상]
미소란 흔히 상대에 대한 호감의 반응입니다. 그래서 미소를 통해 타인을 마음을 인식하고 또 거기에서 따뜻한 정이 오갑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그 의미를 과감하게 비틀어놓습니다. 립스틱처럼 <미소를 바른다>는 얼굴의 표정이 얼마나 상품화 되었는가를 보여줍니다. 이제 인간의 관계는 <컨베이어 벨트에 실리며 마주친 적이 있었던가>에서처럼 도시문명 속 공산품이 되어 유통의 개념만 존재하고, 모두 스스로 <포장>이 되어 거래될 따름입니다. 좀체 속을 알 수 없게 해야 살아갈 수 있는 요즘 세상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스스로를 각박하게 살아왔는가를 깨닫게 합니다. 지하철역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에서 무관심하게 흘러가는 일상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한 시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91 Y를 위하여 - 최승자 2001.08.10 1701 265
990 감자를 캐며 - 송은숙 2006.10.16 1700 225
989 홈페이지 - 김희정 [2] 2005.10.07 1698 236
988 언젠가는 - 조은 2004.12.22 1696 194
987 마포 산동네 - 이재무 2001.05.08 1695 250
986 Across The Universe - 장희정 2007.11.12 1694 122
985 울음 - 강연호 2004.06.01 1694 202
984 빛을 파는 가게 - 김종보 2001.07.16 1694 322
983 色 - 박경희 [1] 2005.07.28 1693 272
982 편지 - 송용호 2002.10.16 1693 213
981 바람의 배 - 이재훈 [1] 2005.11.22 1687 206
980 버스 정류장 - 이미자 2007.04.26 1672 155
979 전생 빚을 받다 - 정진경 2005.12.20 1671 238
978 ㅎ 방직공장의 소녀들 - 이기인 2001.04.24 1668 331
977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 최갑수 2004.02.14 1665 219
976 불법체류자들 - 박후기 [1] 2006.10.30 1664 225
975 갈대 - 조기조 [3] 2005.06.30 1663 192
974 발령났다 - 김연성 2006.06.27 1662 266
973 봄 - 고경숙 2009.02.17 1661 94
972 펜 노동자의 일기 - 이윤택 2001.04.26 1661 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