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세탁소/ 최을원/ 『문학사상』2002 신인상 당선작 中
달빛 세탁소
서민 아파트촌 행복세탁소 주인 박씨는
모두 잠든 깊은 밤
공터에서 세탁을 한다
큰 함박지에 달빛 가득 채우고
퍼놓았던 햇살 한 바가지 풀어 힘있게 문지르면
술술 풀려나가는 검은 먼지들
호주머니에선 녹슨 못 떨어지기도 하고
닭발이 뛰쳐나와 진창에 찍고 온 사연 조아리기도 하고
꼼장어 한 마리 달빛 속을 유영하기도 한다
때로는, 트로트 메들리가 박씨 어깨 흔들기도 한다
헹구어 널면 뚝!뚝! 떨어지는 푸른 달빛들
위에 박씨 하얀 별빛 한줌씩 아낌없이 뿌려준다
고개 무거운 밤이 깊으면
생활의 헤진 구석 실밥 가지런하게 기워지고
다림질 따라 반듯한 포장도로가 생겨난다
그 길 끝 멀리서 찬물에 머리 감은 아침이 천천히 온다
박씨 오토바이는 오늘도 서민 아파트촌을 신나게 달리고
세탁물 받은 사람들
알싸한 그 냄새의 정체 아무도 모르지만,
향기에 취한 비둘기 떼들 모두 그 세탁소로 모여들고 있다
[감상]
따뜻한 상상력, 그리고 이렇게 반듯한 시가 있을까 싶습니다. 현실과 꿈의 경계를 달빛, 별빛을 통해 화음으로 이뤄냅니다. 마지막 비둘기로 아귀를 딱 맞추는 솜씨도 대단한 통찰이고요. 삭막한 이 도시의 어둑한 삶 속에서 詩한 편 오롯이 불 밝힌 밝기만큼 마음 한 구석 짠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