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의 슬픈 두 귀」 / 박후기/ 《작가세계》2004년 겨울호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의 슬픈 두 귀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의 뭉개진 귀를 보면,
굳은 살 하나 박히지 않은
말간 내 두 손바닥이 부끄러워진다
높은 곳을 향해 뻗어가는 벽 위의 덩굴손처럼
내 손은 지상의 흙 한번 제대로 움켜쥔 일 없이
스쳐 지나가는 헛된 바람만 부여잡았으니,
꼬리 잘린 한 마리 도마뱀처럼
바닥을 짚고 이리저리 필사적으로 기어 다니는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의 비애를
나는 알지 못한다
고단한 생의 매트 위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머리에 깔려 뭉개져버린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의 슬픈 두 귀를 보면,
멀쩡한 두 귀를 달고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평형감각 없이 흔들리는
내 어리석은 마음이 측은하고
내 것 아닌 절망에 귀 기울여 본 적 없는
잘 생긴 내 두 귀가 서글퍼진다
삶은 쉴 새 없이 태클을 걸어오고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의 몸은 둥근 통나무 같아
쓰러지고 구르는 것이 그의 이력이지만,
지구(地球)를 끌어안듯
그는 온몸 바닥에 밀착시키며
두 팔 벌려 몸의 중심을 잡는다
들린 몸의 검은 눈동자는
수준기(水準器) 유리관 속
알코올과 섞인 둥근 기포처럼
수평을 잡기 위해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의 두 귀는
세월의 문짝에 매달려 거친 바람 소리를 듣는,
닫힌 내일의 문을 두드리는 마음의 문고리다
[감상]
시에 있어 ‘발견’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시입니다.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는 눈이야말로 시인되기의 첫단추일 것입니다. 레슬링 선수는 팔과 다리 힘뿐 아니라 머리를 이용해서 옆으로 굴리거나 뒤집기도 합니다. 혹은 팔 다리가 붙잡힌 채 머리 하나로 중심을 버티기도 합니다. 그 고된 훈련과 실전으로 말미암아 레슬링 선수의 두 귀는 서서히 변형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아마추어 선수의 귀의 비애를 시인은 연민과 성찰의 시선으로 포착해냅니다. 제목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시적’인 것이 강렬한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