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정류장에서 또 한 소절 - 최갑수

2007.02.27 11:04

윤성택 조회 수:1307 추천:159

<정류장에서 또 한 소절>/ 최갑수/ 《문학동네》 2007년 봄호


        정류장에서 또 한 소절

        숲속길마을 7단지 앞 정류장은 여관처럼 서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슬픈 자세다
        버스가 끼륵 ─ 하고 섰다
        작은 새 한 마리가 내렸다
        대낮인데도 눈물 자국이 얼굴에 번져 있다
        자기도 모르게 밀려온 배도 한 척 있다
        버스가 가고
        간이의자에 앉아서 햇빛과 그림자를 만지작거린다
        이 세상이 감귤 한 봉지만큼만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귓속에서 강물 소리가 흘러나와 개구리처럼 오골댔다

        누구를 보내고 맞는 것이 아니라서 슬리퍼를 끌고 정류장에 갔던 것이다
        베란다에 내놓은 선인장이 말랐고 그것을 오늘은 보았을 따름이다


[감상]
정류장은 버스나 택시 따위가 사람을 태우거나 내려 주기 위하여 머무르는 일정한 장소이지요. 그러니까 목적과 방향, 흐름의 곁인 셈입니다. 아마도 정류장에서 적당한 유속을 지닌 <강물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이러한 풍경 때문일 것입니다. 또 정류장에서의 기다림(시간성)을 확장시킨다면 여행객이 잠시 하룻밤을 머무는 <여관>과 같겠다 싶습니다. 선인장은 혹독한 사막처럼 물을 애타게 기다리다 말라가고, 시인은 정류장에 와서 <눈물>과 <강물>을 깨닫습니다. 다만 <슬픈 자세>로 시가 그렇게 <자기도 모르게 밀려온 배 한 척>으로 정차해 있듯 말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91 캣츠 - 전기철 [1] 2004.01.19 1094 182
990 얼굴 없는 기억 - 김일영 2003.04.10 1095 146
989 허불허불한 - 김언희 2002.02.15 1096 177
988 징글벨 징글벨, 겨울비는 내리고 - 최금진 2002.12.16 1096 172
987 그녀의 염전 - 김선우 2003.05.02 1096 173
986 봄 꽃나무 아래 서면 - 권현형 2003.05.09 1097 178
985 형상기억합금 - 이혜진 2002.07.16 1098 202
984 미탄에서 영월사이 - 박세현 2001.11.08 1099 188
983 물고기 여자와의 사랑1 - 김왕노 2003.01.13 1099 193
982 11월의 밤 - 서지월 2002.12.01 1101 186
981 도망자 - 이현승 2007.10.17 1101 114
980 홍예 - 위선환 2004.01.12 1102 223
979 낙하하는 것의 이름을 안들 수련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 장석원 2002.01.30 1103 199
978 고려장 2 - 정병근 2004.12.23 1104 197
977 달빛 세탁소 - 최을원 2002.11.25 1105 194
976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의 슬픈 두 귀 - 박후기 2004.11.08 1105 170
975 강 건너 불빛 - 이덕규 2009.03.02 1107 101
974 도시생활 - 설동원 [1] 2003.12.18 1108 182
973 겨울잠행 - 손순미 2003.02.07 1110 178
972 낡은 사진첩을 보다가 - 권영준 2003.06.27 1110 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