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송용호 /8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편지
궁금하여라 온종일 그대 생각에 잠겨 숨이 차던 시절 하얀 밤에 적어
설레임과 동봉하던 그 편지는 지금 어디 있을까 그녀의 변심처럼 까만
재를 남긴 채 이제는 더 이상 우표 붙일 일 없어진 하늘 아래를 떠다니
고 있을까, 아니면 그녀의 하얀 손에 꼬깃꼬깃 구겨지다 갱생의 종이
배를 타고 더 아름다운 항에 닻을 내렸는가, 혹 사랑에서 굴러 떨어질
때 내 가슴에 남은 상처처럼 희미하게 바랜 채 그녀만이 아는 어느 외
딴곳에서 몰래 숨어살고 있지는 않을까
사람들은 더 이상 하늘에서 별을 찾지 않듯 편지를 기다리지 않는다
사연 없는 양식(樣式)만을 실어 나르기에 지친 제복의 우편배달부가
내뿜는 연기는 더 이상 낭만적이지 못하고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 끝마
디에 두텁게 앉았던 굳은살도 조금씩 사라져간다 하지만 그보다 아픈
것은 일회용 반창고 한 번 붙였다 떼 내면 이내 아물고 마는 그대들의
사랑, 그 새로운 장난이 지금도 아무렇지 않게 끝나가고 있다는 것, 노
을 없는 일몰처럼 이십세기의 마지막이 그렇게 건조하게 저물어가고
있다는 것…
[감상]
미안합니다, 아직 편지를 버리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