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편지 - 송용호

2002.10.16 16:22

윤성택 조회 수:1693 추천:213

편지/ 송용호 /8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편지


  궁금하여라 온종일 그대 생각에 잠겨 숨이 차던 시절 하얀 밤에 적어
설레임과 동봉하던 그 편지는 지금 어디 있을까 그녀의 변심처럼 까만
재를 남긴 채 이제는 더 이상 우표 붙일 일 없어진 하늘 아래를 떠다니
고 있을까,  아니면 그녀의 하얀 손에 꼬깃꼬깃  구겨지다 갱생의 종이
배를 타고  더 아름다운 항에 닻을 내렸는가, 혹 사랑에서 굴러 떨어질
때 내 가슴에 남은 상처처럼 희미하게 바랜 채 그녀만이 아는 어느 외
딴곳에서 몰래 숨어살고 있지는 않을까

  사람들은 더 이상  하늘에서 별을 찾지 않듯 편지를 기다리지 않는다
사연 없는 양식(樣式)만을 실어 나르기에 지친  제복의  우편배달부가
내뿜는 연기는 더 이상 낭만적이지 못하고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 끝마
디에 두텁게 앉았던 굳은살도 조금씩 사라져간다  하지만 그보다 아픈
것은 일회용 반창고 한 번 붙였다 떼 내면 이내 아물고 마는  그대들의
사랑, 그 새로운 장난이 지금도 아무렇지 않게 끝나가고 있다는 것, 노
을 없는 일몰처럼  이십세기의 마지막이  그렇게 건조하게 저물어가고
있다는 것…



[감상]
미안합니다, 아직 편지를 버리지 못했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91 감자를 캐며 - 송은숙 2006.10.16 1700 225
990 Y를 위하여 - 최승자 2001.08.10 1700 265
989 홈페이지 - 김희정 [2] 2005.10.07 1698 236
988 언젠가는 - 조은 2004.12.22 1696 194
987 Across The Universe - 장희정 2007.11.12 1694 122
986 울음 - 강연호 2004.06.01 1694 202
985 빛을 파는 가게 - 김종보 2001.07.16 1694 322
984 마포 산동네 - 이재무 2001.05.08 1694 250
983 色 - 박경희 [1] 2005.07.28 1693 272
» 편지 - 송용호 2002.10.16 1693 213
981 바람의 배 - 이재훈 [1] 2005.11.22 1687 206
980 버스 정류장 - 이미자 2007.04.26 1672 155
979 전생 빚을 받다 - 정진경 2005.12.20 1671 238
978 ㅎ 방직공장의 소녀들 - 이기인 2001.04.24 1668 331
977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 최갑수 2004.02.14 1665 219
976 갈대 - 조기조 [3] 2005.06.30 1663 192
975 불법체류자들 - 박후기 [1] 2006.10.30 1662 225
974 발령났다 - 김연성 2006.06.27 1662 266
973 봄 - 고경숙 2009.02.17 1661 94
972 펜 노동자의 일기 - 이윤택 2001.04.26 1661 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