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그녀, 요나 - 김혜순

2002.03.26 18:05

윤성택 조회 수:1167 추천:177

그녀, 요나/ 김혜순/ 2002년 『현대문학』3월호
    



           그녀, 요나    
                              

           어쩌면 좋아요
           고래 뱃속에서 아기를 낳고야 말았어요
           나는 아직 태어나지도 못했는데
           사랑을 하고야 말았어요
  
           어쩌면 좋아요
           당신은 나를 아직 다 그리지도 못했는데
           그림 속의 내가 두 눈을 달지도 못했는데
  
           그림 속의 여자가 울부짖어요
           저 멀고 깊은 바닷속에서 아직 태어나지도 못한
           그 여자가 울어요 그 여자의 아기도 덩달아 울어요
           두 눈을 뜨고 당신을 보지도 못했는데 눈물이 먼저 나요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는 게 분명하지요?
           그러니 자꾸만 자꾸만 당신이 보고 싶지요)
  
           오늘 밤 그 여자가
           한 번도 제 몸으로 햇빛을 반사해본 적 없는 그 여자가
           덤불 같은 스케치를 뒤집어쓰고
           젖은 머리칼 흔드나봐요
           이파리 하나 없는 숲이 덩달아 울고
           어디선가 함박눈이 메아리쳐 와요
  
           아아, 어쩌면 좋아요?
           나는 아직 태어나 보지도 못했는데
           나는 아직 얼굴이 다 빚어지지도 못했는데
  


[감상]
이 시가 왜 오늘따라 가슴에 다가오는지 모르겠네요. 정말 어이없는 일에 휘말려, 내가 써야할 시들이 그리 울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91 쉬고 있는 사람 - 허수경 2002.03.21 1404 185
990 오래된 편지 - 권혁웅 2002.03.22 1583 199
989 건조대 - 최리을 2002.03.25 1081 180
» 그녀, 요나 - 김혜순 2002.03.26 1167 177
987 유통기한 - 한정화 2002.03.27 1281 184
986 17시 반의 기적 - 김명인 2002.03.29 1179 183
985 국도 여인숙에서1 - 윤이나 2002.03.30 1228 177
984 아지랑이 - 정승렬 2002.04.01 1198 160
983 성장기 2 - 심보선 2002.04.02 1111 183
982 나를 숨쉬는 여자, 오늘 꽃을 버렸다 - 정재학 2002.04.03 1285 196
981 낡은 자전거가 있는 바다 - 손택수 2002.04.04 1338 176
980 낮달 - 이영식 2002.04.08 1127 189
979 뱀 - 이혜진 2002.04.09 1197 169
978 삶의 음보 - 황인숙 2002.04.10 1252 165
977 며느리밥풀꽃 - 이향지 2002.04.11 1283 167
976 성내동 옷수선집 유리문 안쪽 - 신용목 2002.04.12 1141 181
975 바람부는 저녁에는 나도 함석지붕처럼 흐르고 싶다 - 신지혜 2002.04.17 1230 167
974 벚꽃 핀 술잔 - 함성호 2002.04.19 1172 172
973 바다에 누워 - 정한용 2002.04.22 1194 179
972 분리수거 - 유춘희 2002.04.23 1147 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