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육체 / 이성복 / 『시와정신』2002년 겨울호
여자의 육체
여자의 육체, 하얀 구릉, 눈부신 허벅지,
몸을 내맡기는 그대의 자태는 세상을 닮았구나.
― 파블로 네루다 「사랑의 시」
여자의 육체를 고깃덩어리라 해선 안 되고, 백합 혹은 성배라 해도 안 된
다. 굳이 안 될 것 없지만, 요컨대 틀렸다는 얘기다. 여자의 육체에는 고압
의 주문이 걸려 있어서, 가까이 가면 당신의 열매는 타버린다. 영원한 저
주는 당신과, 여자의 육체 양쪽에 걸린 것이어서, 어떤 방식으로든 협상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제 육체 바깥으로 쫓겨나 있는 여자를 만날 수 없을 뿐
더러, 여자 또한 당신의 육체와 타협해 영원한 저주를 풀어야 하니, 우리
살아서는 펄펄 끓는 서로의 가마솥에 수제비처럼 제멋대로 사랑을 떠 넣
는 수밖에 없다.
[감상]
육체와 사랑이 어떻게 결부되는가에 대해 엿볼 수 있는 시입니다. 시인은 '주문'이 걸려 있다는 표현을 통해 '결혼'이라는 제도를 설명합니다. 수제비를 만들기 위해 떠 내는 밀가루반죽처럼 어떤 모양이든 사랑은 서로 간의 솥의 문제로 남습니다. 일생동안 당신의 저주를 풀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타협하시겠습니까? 이 펄펄 끓지만 텅 빈 이 양푼에. 라고 해봄직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