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실종 - 한용국

2003.06.02 16:20

윤성택 조회 수:1027 추천:157

「실종」 / 한용국 / 2003년 『문학사상』신인상 수상작



        실종


  누워 있는 남자의 입으로 공기가 밀려 들어간다 느릿느릿 기다려왔다는
듯이  열린 식도를 통과해 간다  곧 저 공기는 남자의 꼬리뼈에서  마지막
흔적을 밀어내리라 남겨질 한 줌의 질척함을 비둘기가 안다는 듯 고개 주
억거리며 지나간다 십분 전 그는 마지막 담배를 피웠으리라 손끝이 다 타
들어갈 때쯤 모든 회한과 환멸을 떨어뜨리고  수도승처럼 신문지 위에 누
웠으리 그의 잠을 깨우던 굉음이 떠나가고 세상이 그를 정적 속으로 초대
한 것이다 한때  그를 빛나게 했던 꿈의 이마는 꼬깃꼬깃 접혀 있다  어쩌
면 저녁거리의 불빛들이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을까 하지만 모로 누워 웅
크린 자세는 무언가 단단히  그러쥔 손아귀처럼 보이는데  아무도 알아채
지 못하는 안식을  단 한 번의 눈길로 스치는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가  왜 이 소리 없는  잔혹 앞에서야 모든 궁극적인 질문은  보편성을
얻는가 공기가 지나간  그의 몸을 얼룩진 신문의 활자들이 더듬더듬 읽으
며 덮어주고 있다



[감상]
'주제를 용해시키는 숙련된 솜씨'라는 심사평이 있군요. 이 시는 그야말로 관념이 어떻게 의식에 개입되는지 한 사내의 죽음을 통해 보여줍니다. 긴밀하게 사내의 현실을 상상력으로 포착해내며 지난 신문의 활자들로 잊혀져 가는 쓸쓸한 풍경이 선합니다. '세상이 그를 정적 속으로 초대한 것이다' 단단히 그러쥔 그의 손아귀가 무엇이 쥐었다가 놓인 것인지. 삶은 참.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91 20세기 응접실 - 윤성학 2007.06.05 1129 155
990 봄날 - 김기택 2003.05.19 1355 156
989 밤 막차는 왜 동쪽으로 달리는가 - 김추인 2003.10.21 959 156
988 수전증 - 박홍점 [1] 2007.01.24 1184 156
987 더딘 사랑 - 이정록 2003.04.14 1267 157
» 실종 - 한용국 2003.06.02 1027 157
985 도화 아래 잠들다 - 김선우 2003.11.12 1163 157
984 암호 - 구순희 2004.04.28 1205 157
983 목련 - 심언주 2007.04.05 1440 157
982 산수유 아래서 징소리를 - 김길나 2007.06.16 1195 157
981 기도와 마음 - 이지엽 2008.03.24 1738 157
980 절정 - 함성호 2011.04.25 4059 157
979 밤 골목 - 이병률 2002.11.12 1062 158
978 여자의 육체 - 이성복 2002.12.27 1335 158
977 묵음의(默音) 나날들 - 은 빈 2003.02.12 964 158
976 때늦은 점심 - 이지현 [1] 2003.04.02 1055 158
975 불타는 그네 - 신영배 [1] 2007.05.08 1242 158
974 사랑 - 김요일 2011.04.04 2461 158
973 범일동 블루스 - 손택수 [1] 2003.02.14 1296 159
972 인생 - 박용하 [2] 2003.10.10 1857 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