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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나무야 바람아 - 오규원

2007.02.07 10:49

윤성택 조회 수:1602 추천:200


《가끔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 오규원/ 《문학과지성》 (1987)

        나무야 나무야 바람아

        나무야 나무야 그대가
        생명의 검증 자료며
        치욕의 광명이라면
        물의 척추이며
        신경의 음표라면

        바람이여 그대는
        시간의
        노래의 손톱이며
        땅 위의 물이며
        차가운 불이라

        나무야 나무야 그대가
        대지의 모닥불이며
        불의 귀라면
        바람이여 그대는
        불의 종소리며
        물의 뿔이라

        나는 그대 육체가
        보고 싶단다
        움직이지 않으면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 정신이여
        그대 바람이여

        나무처럼 여기 와
        내 앞에 서라
        탄력이 있으니
        육체도 있으렷다!
        나는 그대 육체가 보고 싶단다


[감상]
언제 어떻게 이 시집이 내게 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참 오래 이 시집이 곁에 있었습니다. 98년에야 메모해 놓은 시집 갈피의 글을 봅니다. <내가 문지 시집을 소장하게 된 최초의 시집이다. 아이러니하다. 주목받지 못하는 내가 주목받아야 하는 시집을 최초니 하는 말로 옮겨 적어야 하다니… 살다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나의 친구는 나의 사랑은 나의 꿈은 나의 인생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이 결함투성이인 세상에서, 나는 누구에게 주목받고 싶어 하는가! (98.1.21 다시쓰다)>.
이제 시인은 수목장으로 강화도 어느 소나무 아래 묻히셨습니다. 마지막까지 제자의 손바닥에 손톱으로 쓴 시,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를 신문기사로 읽다보니, 문득 <나무야 나무야 바람아>란 시가 눈에 들어옵니다. <나무처럼 여기 와/ 내 앞에 서라>, 정신의 탄력으로 육체가 완성되는, 그리하여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는 어떤 마음이 깃든 간절한 바람일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머리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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