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 한승태/ 『현대문학』 (2002) 6월호 신인 추천 시
이장(移葬)
한여름 윤달이 뜨고
한 가지에서 뻗어나간 가족들이
저승과 이승을 가로질러 한자리에 모였다
상남의 산골에서 내려오신 할아버지와
내린천 골짜기에서 나오신 작은할머니
성남의 시립묘지에서 오신 큰아버지 내외분
제일 가까운 해안의 뒷골목에서 유골 대신
몇 가닥의 머리카락만 보내오신 큰할머니와
공원묘지에서 나를 보내신 아버지
사촌 형들은 말없이 구멍을 팠다
야트막한 산은 마치 여자의 음부처럼 둔덕이었다
지관은 음택이라고 했다
나는 그게 왠지 음핵처럼 들렸다
잣나무 그늘에 누워 뼈를 말리는 망자들
나는 검불을 긁어모았다
여기저기 떨어진 삭정이는 꼭 집 떠난 큰할머니의 뼈 같았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신 걸까요, 할아버지
알 수 없는 작은 벌레들이
그 나뭇가지를 갉으며 아기처럼 울었다
패찰을 든 지관의 말에 따라
망자는 다시 동서남북을 가려 누웠다
망자의 집이 꼭 애기집 같았다
아내의 뱃속에서 둘째가 자꾸 발길질을 했다
[감상]
솔직하고 잔잔한 이장에 관한 풍경이 선합니다. 윤회를 암시하는 말미처리도 인상적이고요. 특이하게 이 시는 달리 알아듣거나(음핵처럼 들렸다), 달리 보거나(애기집 같았다)의 접점에서 시적인 것을 끌어내는 장점이 있습니다. 달리 보고, 달리 생각하기 아마도 시는 그런 것에서 첫단추가 꿰어지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