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들의 진동>/ 이선형/ 《문학마당》 2006년 겨울호
벌들의 진동
눈도, 입도 없는 혼자라는 곳
먼지의 풀썩이는 춤 아래서
자두꽃 아래서 친구들은 술을 마시다 실컷 찢어져 부어올라
더러는 울고 더러는 웃는다
자두꽃 향기는 권투선수가 주먹을 날리는 것처럼,
휘청 보이지 않는 가지가 흔들리고
자두꽃 향기는 아무도 없는 링에서,
혼자 수없이 뻗는 주먹이 날아가 허공을 때리고
자두꽃 향기는 찢어 터지고 부어오른 눈두덩이,
땀을 흩으며 벌들이 솟아오른다
친구는 미소로 내게 자두꽃 한 가지를 꺾어준다
한 주먹을 날리는 거다
하지만 그쯤이야, 나는 벌써 벌처럼 피하지
눈도, 입도 없는 혼자라는 곳
먼지의 풀썩이는 춤 아래서
[감상]
자두꽃 나무 아래서 도란도란 모인 친구들, 그리고 웃거나 우는 친구의 표정들, 얼굴 가득 주름이 잡혀 터진 자두 같은 친구들. 이 시를 읽다보면 이미지의 형상화가 참 새콤하게 이루어졌구나를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시의 가장 빼어난 부분은 <권투선수가 주먹을 날리는 것>을 자두로 비유한 것에 있습니다. 자두의 붉고 둥근 모양이 권투 글러브가 되는 상상력, 누구도 생각 못할 시인만의 형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