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 김영석/ 《문예연구》2006년 겨울호
대숲
저 뒤안길 대숲에는
우리가 돌아보지 않고 잊어버린
그림자가 바람과 함께 쓸쓸히 살고 있다
달빛이 새어드는 대숲에는
스산한 댓잎 바람에 옷깃을 펄럭이는
우리의 그림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는 꼭 한 번 만나야 할
그림자들이 댓잎 바람에 부서지며
기억 속에 서성이고 있다
[감상]
숲을 이룬 대나무들 사이 서걱거리는 바람소리, 그것은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속삭임 같습니다. '그림자'가 빛에 투사된 반영물인 것처럼, 대나무 하나 하나에도 그 어떤 영혼의 실체가 깃들어 있습니다. 집단으로 연대해 꼿꼿하게 서 있는 대숲의 결계 앞에서 시인이 '우리'를 돌아보는 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요즘의 세태에 대한 성찰입니다. 대숲에서 누군가 나를,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상상, 그 애잔함이 우리를 숲으로 이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