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모양의 얼룩》/ 김이듬/ 《시작》(2005)
무의지의 수련, 부풀었다
신주쿠공원의 수련은 극단적이다
히스테릭한 여자처럼 보일 수 있다
갈기갈기 찢긴 얼굴로 치올라온다
두 송이 수련은 마주보고 서른 셋 단검을 꽂으려 한다
몸을 묶인 채 끌려갔을 때 희미한 빛조차 없던 방
질퍽한 흙바닥을 납작 기어야 했다
그런 데가 있었다 땅이 흔들리며 가라앉았다
두세 번이 아니라 반복되고 또다시
내가 잠시 비운 사이에 너 움직이면 알지?
일본 남자의 칼은 길지 않았다
신주쿠 검붉은 수련은 늪 속의 뿌리를 모른다
나는 재빨리 유리 천장에 얼굴을 처박았다
분간할 수 없이 햇볕은 깨뜨려졌다
수련은 육중한 수면의 문을 대가리로 뚫고 올라온다
파편으로 찢어발겨진 꽃잎들이 수련을 완성한다
[감상]
마츠다 미치코 작가의 ‘여자고교생 유괴사육사건‘ (1994년)이란 소설이 있습니다. 일본의 한 40대 남자가 여고생을 납치해 감금한 충격적인 실화 사건을 소재로 해서 일본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 후 <신주쿠 여고생 납치사건>이란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내용인즉슨, 조깅을 하던 순백의 여고생이 손발이 묶인 채 눈을 뜬 곳은 어둡고 낯선 방입니다. 그리고 시종일관 영육이 일치된 완전한 사랑을 유괴로 이루려 하는 비틀린 로맨스를 보여줍니다. 이 시는 이렇게 영감을 얻어 <수련>이 피는 과정과 납치사건을 병치 시켜 의미를 확장시킨 것 같습니다. <그런 데가 있었다 땅이 흔들리며 가라앉았다 / 두세 번이 아니라 반복되고 또다시>에서 보이는 반복적인 행위 암시, 그리고 탈출을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이 <나는 재빨리 유리 천장에 얼굴을 처박았다>로 형상화됩니다. 손발이 묶인 몸으로 유리창을 얼굴로 깨고 밖으로 나가고자 할 때의 고통을 생각하면 수련은 가히 <파편으로 찢어발겨진 꽃잎들>이겠지요. 몇 군데 모호한 표현과 엮인 이 시를 읽고 있으려니, 에로스(자기보존 충동)와 타나토스(죽음 충동)라는 프로이트의 오래된 짝패를 뒤섞어 놓았다는 <신주쿠 여고생 납치사건> 영화평을 옮겨적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