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나무길 - 문정영

2007.01.25 16:12

윤성택 조회 수:1423 추천:163

<나무길>/ 문정영/ 《문학들》 2006년 겨울호


        나무길

        나무와 나무 사이에도 길이 있다
        바람이 건너다니는 길이다
        새가 날개를 접었다 펴면서 건너면
        길은 수많은 의문의 잎을 달고 생각에 잠긴다
        그 옆으로 열열이 달려가는 전봇대가 보인다
        그 길은 묶여서 자유롭지 못하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서로를 붙잡을수록
        지독한 가슴앓이를 한다
        서로를 묶는 일 나무들은 하지 않는다
        놓아둘수록 길은 수많은 갈래를 만든다
        어디든지 나무만 있으면 갈 수 있다
        늦은 봄까지 초록이 전염되는 것을 보면 안다
        가을이 깊을수록 의문을 떨구어
        길을 환하게 한다
        어렵게 어렵게 살려하지 않는다
        가고 오지 못한 길 사람만이 만든다


[감상]
관찰과 깊이, 사유의식이 자연스럽게 연동된 시입니다. 이 시에서 자연을 대변하는 것이 <나무>라면, 인간이 만들어낸 물질문명의 상징은 <전봇대>입니다. 이 두 소재는 <길>이라는 방향성에서 서로 나름의 서사를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나무의 길은 <바람이 건너다니는 길>이지만, 전봇대는 서로를 묶어 자유롭지 못한 아스팔트길인 것입니다. <늦은 봄까지 초록이 전염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자연은 우리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길>을 일깨워줍니다. 그러니 고속도로가 산을 잘라내고 터널을 뚫는 것은 영영 <가고 오지 못한 길>로 접어들게 하는 단절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71 꽃기름주유소 - 고경숙 2007.02.23 1660 168
970 눈길, 늪 - 이갑노 2006.03.29 1659 248
969 곶감 - 문신 2006.04.12 1658 212
968 가문동 편지 - 정군칠 2006.02.02 1657 229
967 종이호랑이 - 박지웅 2006.04.10 1656 226
966 네 사소한 이름을 부르고 싶다 - 박소원 [1] 2005.01.18 1656 215
965 가물거리는 그 흰빛 - 이근일 2006.06.05 1653 261
964 쓸쓸한 날에 - 강윤후 2001.08.23 1651 211
963 희망은 카프카의 K처럼 - 장석주 2001.06.28 1649 325
962 맡겨둔 것이 많다 - 정진규 2004.03.03 1648 223
961 나방 - 송기흥 2005.08.25 1645 205
960 안녕, 치킨 - 이명윤 [2] 2008.02.04 1643 130
959 예감 - 류인서 2005.03.25 1643 205
958 나무 - 안도현 [1] 2003.03.15 1643 163
957 따뜻한 슬픔 - 홍성란 2001.11.27 1641 190
956 교통사고 - 김기택 [4] 2005.06.14 1640 221
955 객관적인 달 - 박일만 [3] 2005.10.25 1639 222
954 연애에 대하여 - 이성복 2002.02.01 1639 184
953 사십대 - 고정희 2011.02.22 1638 125
952 아내의 재봉틀 - 김신용 [1] 2006.05.05 1636 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