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내는 사내>/ 박미란/ 《시와반시》 2006년 겨울호
창문을 내는 사내
어느 구석진 방의 벽이었을까
지금, 창문은
벽에서 나와 세상으로 이어진다
사내는 새벽부터 빌라 일층에 매달려 있다
오래 이 일을 해왔다는 듯
자신이 뚫고 지나가야 할 벽을 눈어림으로 가늠하며
드릴로 구멍을 내고 있는 중이다
햇빛을 보지 못한 어떤 안타까움이 사내를 움직였는지
막무가내 오로지 벽에 전념하는 저 힘,
그야말로 근성이다
뚫어내지 못할 두려움은 아무 것도 없겠다
원래 창이었던 자리 되돌려주듯
사내는 벽의 위쪽에 커다란 구멍 하나 내놓는다
창문의 모양 다듬어 놓고
창틀을 제대로 들어앉히고
메워지지 않는 틈으로 시멘트 반죽을 이겨 넣는다
유감없이 뒷마무리 하듯
사내가 조심스레 유리창 두 쪽 끼워놓자
막 퍼져나가던 햇살이 새로 난 창으로 옮겨 붙는다
멀찍이 떨어져
담배 한 대 피워 무는 사내가
유리창으로 들어서자 빛나는 창문이 완성된다
[감상]
집을 짓고 창을 내는 인부의 모습에서 구원과도 같은 <햇빛> 이미지가 느껴지는 시입니다. 평범하고 무료한 일상일지도 모를 풍경이 낯설게, 그리고 섬세하게 수놓아져 있습니다. <햇빛을 보지 못한 어떤 안타까움이 사내를 움직였는지>에서처럼 지하 단칸방에서 살아가는 소시민의 열망과 절실함이 작용했을까요. <벽에 전념하는 저 힘>은 마치 신성한 기도처럼 경건해 보입니다. 마지막 연, 한쪽 눈을 찡그리고 담배를 문 사내의 모습이 강렬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