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수선집 근처 - 전다형

2002.01.29 09:58

윤성택 조회 수:1117 추천:174


수선집 근처/ 전다형 / 200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수선집 근처



        구서1동 산 18번지
        무허가 간이 수선집이 있었네
        의수족 아저씨는 십 수년 째
        주일만 빼고 수선일을 했네
        나는 팔 부러진 우산을 들고 찾아갔네
        허름한 문이 굳게 닫혀 있는
        단골집 돌아서다 어둠 속
        우두커니 서 있는 입간판에게 물었네
        수척한 얼굴로 속사정을 털어놓았네
        꺾어진 골목으로 어둠 몇 장 굴러다니고
        영문을 모르는 바람이 틈새를 드나들고 있었네
        맞은 편 산뜻한 수선집 미싱 요란하게
        푸른 하늘을 박고 있었네
        찾아준 은혜 잊지 못할 겁니다
        헛걸음하게 해 죄송합니다
        삐뚤한 글씨체가 손잡이 근처 붙어 있었네
        나는 뜨거운 것을 목에 걸었네
        발길을 돌려 건널목에 섰네
        의수족 아저씨가
        손때 묻은 연장을 메고 걸어가고 있었네
        누가 맡겼다 찾아가지 않은 낡은 가방에
        망치, 칼, 가위 쓰다 남은 실, 지퍼, 우산대 몇
        땅으로 기우는 어깨 위에서 강물소리가 들렸네
        아저씨가 자꾸만 되돌아보았네
        신발 밑창에 친 못처럼 총총하게 박혀 있는
        별을 올려다보며 헛기침을 했네
        수선집 근처
        굵은 주름살 떨어져 뒹굴고 있었네




[감상
]

소외된 것들이 시가 되어 온기를 가집니다. 읽고 나면 마음 한켠이 참 따뜻해지는 그런 것. 적절한 비유가 현실적인 상황과 잘 잇대어진 시입니다. "산뜻한 수선집 미싱 요란하게/ 푸른 하늘을 박고 있었네"라든가, "땅으로 기우는 어깨 위에서 강물소리가 들렸네", "신발 밑창에 친 못처럼 총총하게 박혀 있는/ 별"등에서 보이는 표현들이 고즈넉한 수선집 풍경에 드리워집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71 병(病)에 대하여 - 여태천 2009.02.13 1110 94
970 성장기 2 - 심보선 2002.04.02 1111 183
969 내 안의 붉은 암실 - 김점용 2002.05.30 1111 193
968 구부러진다는 것 - 이정록 2002.07.09 1111 174
967 공감대 - 연왕모 2002.02.07 1112 180
966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 박찬일 2002.10.10 1112 232
965 귀 - 장만호 [1] 2003.05.06 1112 209
964 거울 속의 벽화 - 류인서 [1] 2004.01.09 1112 193
963 잔디의 검법 - 강수 [1] 2005.01.26 1114 219
962 주름 - 강미정 2003.04.18 1115 173
» 수선집 근처 - 전다형 2002.01.29 1117 174
960 달밤에 숨어 - 고재종 2003.04.03 1117 161
959 안개에 꽂은 플러그 - 이수명 2002.03.16 1118 178
958 현몽 - 함태숙 2002.04.29 1120 178
957 용설란 - 최을원 2002.10.08 1120 218
956 틀니가 자라는 폐가 - 이혜진 2002.09.02 1121 219
955 정전 속에서 - 서영미 2003.12.01 1121 191
954 못질 - 장인수 2003.11.26 1123 160
953 귀명창 - 장석주 2008.01.25 1123 136
952 달의 다리 - 천수이 [1] 2004.01.26 1124 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