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 고재종/ 시와시학사
달밤에 숨어
외로운 자는 소리에 민감하다.
저 미끈한 능선 위의
쟁명한 달이 불러 강변에 서니,
강물 속의 잉어 한 마리도
쑤욱 치솟아 오르며
갈대숲 위로 은방울들 튀기는가.
난 나도 몰래 한숨 터지고,
그 갈대숲에 자던 개개비 떼는
화다닥 놀라 또 저리 튀면
풀섶의 풀 끝마다에
이슬농사를 한 태산씩이나 짓던
풀여치들이 뚝, 그치고
난 나도 차마 숨죽이다간
풀여치들도 내 외진 서러움도
다시금 자지러진다. 그 소리에
또또 저 물싸린가 여뀌꽃인가
수천 수만 눈뜨는 것이니
보라, 외로운 것들 서로를 이끌면
강물도 더는 못 참고 서걱서걱
온갖 보석을 체질해대곤
난 나도 무엇도 마냥 젖어선
이렇게는 못 견디는 밤,
외로운 것들 외로움을 일 삼아
저마다 보름달 하나씩 껴안고
생생생생 발광(發光)하며
아, 씨알을 익히고 읽히며
저마다 제 능선을 넘고 넘는가.
외로운 자는 제 무명의 빛으로
혹간은 우주의 쓸쓸함을 빛내리.
[감상]
이 시를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자연과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느낍니다. 꽉 닫힌 창문이 있고 그것을 열면 고층의 아파트가 휘청거리며 걸어나오는 이곳에서는 명치끝 아리는 풍경입니다. 익히 자연과 서정에서 우리 삶의 본질을 통찰해내는 시인임을 알 수 있는 작품입니다. 외로움을 시적대상들과 함께하며 혹은 그것들을 중심에 세우며 '난 나도'로 슬몃 합일화하는 우주적 깊이가 남다릅니다. 이 쓸쓸함의 주파수를 잃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