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강미정/ 『신생』2003년 봄호
주름
계속된 침묵을 떠나보내지 않으려고
삭풍을 잡은 퍼런 울음을 단단히 묶어 두려고
제 몸 속에 파문을 새겨 넣은 나무처럼
떨림은 둥근 무늬를 지니고 있다
쉼 없는 파문을 움켜쥐고 있다
어깨를 떨며 울었던 상처의 옹이마다
아픈 몸을 누인 슬픔이
둥근 눈물로 쏟아지는 것도
몸 속으로 새겨 넣은 물무늬 때문이다
마음 한가운데를 움켜쥐고 있는 파문 때문이다
삶은 떨림의 한가운데를 움켜쥐고
둥근 파문으로 기억될 것들을 키우는 곳,
움켜쥐었던 파문을 놓아 버리면
한꺼번에 닥칠 커다란 떨림으로 몸 가누지 못할까봐
꾹꾹 가슴으로 물무늬를 삼켜 낸 사람의
얼굴에서 물무늬로 무늬지는 시간을 읽는다
오랜 여운으로 깊고 둥글어지는 떨림,
파문을 잡아낸 인생만이 둥글어진다
[감상]
사람의 마음에 물무늬가 있다고 합니다. 그 파문이 얼굴에 무늬 져서 주름이 된다는 발상. 이 시가 좋은 이유는 이런 의식의 틀이 견고하게 이뤄져 있다는 점입니다. 설득력 있는 전개와 아울러 마지막 '파문을 잡아낸 인생만이 둥글어진다'까지 긴장이 꽉 조여져 있네요. 그래서 무덤은 둥근 것일까요. 알처럼 둥글게 또 어느 세상에 다시 부화되리란 믿음 같은 거. 여하간 좋은 시네요. 오늘은 창밖 모든 바닥에 하루종일 봄비로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그 파문이 아가미가 되어 봄이 숨쉬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