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감나무가 있는 집 - 김창균

2005.09.28 14:10

윤성택 조회 수:1775 추천:222

《녹슨 지붕에 앉아 빗소리 듣는다》/ 김창균/ 《세계사》시인선


        감나무가 있는 집

        짖지 못하는 개 한 마리
        감나무에 매 놓고
        집주인은 어디 갔나.
        개들은 빈둥대다
        가끔씩 화풀이하듯 밥그릇을 발로 찬다.
        발로 차면 으레 소리도 함께
        따라가기 일쑤여서
        빈집엔 종종 서러운 소리가 나기도 했다.
        바람은 맨발로 집구석을 드나들고
        홍시를 좋아하던 감나무 집 할머니는
        작년 이맘때 돌아가시고
        가슴이 뜨거워 견디지 못하는 홍시는
        까치들에게 몸을 내주었다.
        어떤 날은 너무 몸이 뜨거워
        땅에 이마를 쳐박고 떨어지는 날도 있었다.
        짖지 못하는 개 한 마리
        감나무에 매어두고
        밤이 늦어도 주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개들이 혀를 물고 누워
        주인을 기다리는 동안
        남의 집 지붕을 오래오래 비추며
        서있는 등불
        홍시 하나.
        

[감상]
주인이 부재중인 집, 그 적요한 풍경 속 개 한 마리가 눈에 선합니다. 더욱이 <짖지 못하는 개>라는 설정에 쓸쓸함이 더합니다. 사람이 살다 떠난 빈집의 감나무는 감이 달리지 않는다는군요. 감나무 아래 개조차 오줌똥을 누지 않아 더 이상 양분될 것이 없기 때문이랍니다. 감나무는 <할머니>마저 돌아가시자, 마지막 사력을 다해 <남의 집 지붕을 오래오래 비추며/ 서있는 등불/ 홍시 하나>를 기다림으로 매단 것인지도 모릅니다. <녹슨 지붕에 앉아 빗소리 듣는다> 제목처럼 자연스럽고 소박한 시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71 병(病)에 대하여 - 여태천 2009.02.13 1110 94
970 성장기 2 - 심보선 2002.04.02 1111 183
969 내 안의 붉은 암실 - 김점용 2002.05.30 1111 193
968 구부러진다는 것 - 이정록 2002.07.09 1111 174
967 공감대 - 연왕모 2002.02.07 1112 180
966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 박찬일 2002.10.10 1112 232
965 귀 - 장만호 [1] 2003.05.06 1112 209
964 거울 속의 벽화 - 류인서 [1] 2004.01.09 1112 193
963 잔디의 검법 - 강수 [1] 2005.01.26 1114 219
962 주름 - 강미정 2003.04.18 1115 173
961 수선집 근처 - 전다형 2002.01.29 1117 174
960 달밤에 숨어 - 고재종 2003.04.03 1117 161
959 안개에 꽂은 플러그 - 이수명 2002.03.16 1118 178
958 현몽 - 함태숙 2002.04.29 1120 178
957 용설란 - 최을원 2002.10.08 1120 218
956 틀니가 자라는 폐가 - 이혜진 2002.09.02 1121 219
955 정전 속에서 - 서영미 2003.12.01 1121 191
954 못질 - 장인수 2003.11.26 1123 160
953 귀명창 - 장석주 2008.01.25 1123 136
952 달의 다리 - 천수이 [1] 2004.01.26 1124 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