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아득한 봄 - 천수호

2006.07.01 13:38

윤성택 조회 수:1876 추천:223

<아득한 봄> / 천수호/ 《서시》 2006년 여름호


        아득한 봄

        그 안에 내가 똑바로 누워 있다

        다시 들어가 누울 때까지
        한껏 열려있는 미라의 눈

        몇 백 년 전 동침한 남자의 눈과 꼭 닮은,
        지하철 옆자리 아기의 눈

        꽉 찬 조바심과 팽팽한 호기심으로
        두 주먹 탱글탱글 쥔 동공

        터져라, 씨앗
        새잎과 새싹을 품고 있는 저 눈

        지상구간은 잠깐이다
        
        다시 땅으로 기어들어가
        봄을 줄줄이 끌고 나오는 열차 속

        불쑥 새순 같은 입술을 내미는
        몇 백 년 전 그 남자, 이미 아기가 되어버린,


[감상]
불교의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지하철에서의 아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독특합니다. <두 주먹 탱글탱글 쥔 동공>의 아이에서 <몇 백 년 전 동침한 남자>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은 시인만의 즐거운 상상력이겠지요. <눈>에 초점을 맞춰 시공간을 넘나드는 흐름은 짧은 시임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생략과 응축으로 박진감이 넘칩니다. <지상구간은 잠깐이다>에서 이 시의 매력이 돋보이는데 이 의미는 지하철의 지상구간뿐만 아니라, 땅 속 죽음에서 잠시 떠오른 현생의 삶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윤회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고난이 근본적으로 자신 속에 있고 모든 문제는 자신이 야기 시킨 문제라는 데 있습니다. 잠깐 지나치는 소소한 지하철 풍경일지라도 시인에게는 먼 과거에서 비롯된 극적인 순간인 것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71 병(病)에 대하여 - 여태천 2009.02.13 1110 94
970 성장기 2 - 심보선 2002.04.02 1111 183
969 내 안의 붉은 암실 - 김점용 2002.05.30 1111 193
968 구부러진다는 것 - 이정록 2002.07.09 1111 174
967 공감대 - 연왕모 2002.02.07 1112 180
966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 박찬일 2002.10.10 1112 232
965 귀 - 장만호 [1] 2003.05.06 1112 209
964 거울 속의 벽화 - 류인서 [1] 2004.01.09 1112 193
963 잔디의 검법 - 강수 [1] 2005.01.26 1114 219
962 주름 - 강미정 2003.04.18 1115 173
961 수선집 근처 - 전다형 2002.01.29 1117 174
960 달밤에 숨어 - 고재종 2003.04.03 1117 161
959 안개에 꽂은 플러그 - 이수명 2002.03.16 1118 178
958 현몽 - 함태숙 2002.04.29 1120 178
957 용설란 - 최을원 2002.10.08 1120 218
956 틀니가 자라는 폐가 - 이혜진 2002.09.02 1121 219
955 정전 속에서 - 서영미 2003.12.01 1121 191
954 못질 - 장인수 2003.11.26 1123 160
953 귀명창 - 장석주 2008.01.25 1123 136
952 달의 다리 - 천수이 [1] 2004.01.26 1124 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