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십자로 - 이동호

2005.10.11 11:24

윤성택 조회 수:1547 추천:222

<십자로> / 이동호/ 《다층》2005년 가을호


        십자로

        피가 철철 흘러내리듯 위에서부터
        아랫방향으로 차들이 고여있다 신호등이
        머금고 있던 핏물을 꿀꺽꿀꺽 삼키자
        하늘이 파란 신호등을 켜놓는다
        그 순간 차들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신호등의 핏물이 다시 고일 때까지
        당분간 차들은 흘러내리는 것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맞은편으로 건너가기 위해 사람들이
        횡단보도 앞에 못 박혀 있다
        삶이 언제 박해 아닌 적 있었던가
        얼굴마다 순례의 흔적, 주름살은
        고뇌가 자라는 고비사막이다
        네거리를 짊어지고 청소부가 오르막을
        휘청거리며 오르고 있다
        그의 머리 위로 햇살이 가시처럼 꽂힌다
        그의 얼굴을 타고 차들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감상]
상상력을 통한 강렬한 묘사가 돋보이는 시입니다. <피>와 <십자가>의 상징처럼 이 시의 묘사는 이미 <청소부>로 가닿는 일정한 해석의 암묵적 결과를 보여줍니다. <피>라는 발화지점에서 움직이고 흐르며 고이고, 또 나아가는 것도 인상적이고요. <주름살>이 <고비사막>으로 되는 비유도 꼼꼼함과 스케일이 겸비된 통찰입니다. 고단한 일상의 가장 낮은 위치의 청소부를 구세주로 형상화한다는 점, 이처럼 시는 하나의 뜨거운 증언의 기록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71 단풍나무 한그루의 세상 - 이영광 2003.10.23 1233 159
970 정류장에서 또 한 소절 - 최갑수 2007.02.27 1307 159
969 아지랑이 - 정승렬 2002.04.01 1198 160
968 공중의 유목 - 권영준 [1] 2003.02.04 888 160
967 생선 - 조동범 [1] 2003.03.21 1166 160
966 경비원 박씨는 바다를 순찰중 - 강순 2003.04.30 938 160
965 못질 - 장인수 2003.11.26 1123 160
964 미싱 - 이혜진 2004.07.12 1132 160
963 바람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 조용미 2004.07.13 1279 160
962 스며들다 - 권현형 2004.08.04 1396 160
961 2007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3] 2007.01.04 2019 160
960 남해 유자를 주무르면 - 김영남 2011.04.06 1824 160
959 뻘 - 유지소 2002.12.13 954 161
958 뿔에 대한 우울 - 김수우 2002.12.24 895 161
957 증명사진 - 김언 2003.01.10 1163 161
956 달밤에 숨어 - 고재종 2003.04.03 1117 161
955 낯선 길에서 민박에 들다 - 염창권 2003.05.16 962 161
954 사랑 - 김상미 2003.08.14 1773 161
953 단검처럼 스며드는 저녁 햇살 - 이덕규 2003.11.06 1140 161
952 물푸레나무라는 포장마차 - 이정록 [1] 2004.06.23 1243 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