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비평』 2001년 가을호 / 노혜경
캣츠아이 13
- 미장원 처녀
내 친구 숙이는 미장원 처녀. 도시의 변두리, 지친 사람들이 밤늦게
돌아와 고단한 몸을 누이는 잠자리 곁에 그녀의 미장원이 있다. 우리가
어릴 적 꿈꾸던 마술거울이 걸려 있진 않지만, 들여다보면 늘 바쁜 아
줌마들이 뽀골거리는 파마를 하고 있는 곳. 꽃무늬 보자기를 뒤집어쓰
고 서둘러 집으로 가는 거칠고 옹이진 손들 사이로, 그녀의 늙어버린
엄마가 중고 미용실용 의자 위에서 잠들어 있다. 그녀의 사악한 남편이
미용실 바깥에서 서성이고 있다. 그녀의 잔인한 시엄마가 손지갑을 흔
들며 그녀를 때린다. 그녀의 굶어죽은 딸이 거울 속에서 잠들어 있다.
그녀는 길게 담배 한모금 내뿜으며 한 손으로 드라이를 한다. 숙이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산 여자. 고통이 그녀의 생을 종이처럼 접어 부피
가 두터운 책으로 제본을 했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지 않는다. 그녀의 거울 속엔 지
하실이 있고, 그 지하실 낡은 찬장 속엔 우리가 만들고 잊어버린 수많
은 얼굴들이 있다. 아직도 머리카락이 자라나는 그 아름다운 소녀의 얼
굴. 복숭아빛 뺨에 어울리는 둥근 타래머리를 하고 싶어요. 공주처럼 머
리를 높이높이 올리고 싶어요. 사내아이처럼 앞머리를 자르고 싶어요.
거울 앞의 작은 소원들을 숙이의 거울은 하나도 남김없이 기억해둔다.
숙이가 낡은 집 먼지를 걷어내듯 거울 속으로 들어와 내 얼굴을 만진
다. 불이 오른다. 차가운 그녀의 손이 내 불타오르는 얼굴을 식혀준다.
부드러운 그녀의 손이 내 머리카락 사이로 노래를 흐르게 한다. 그녀의
죽은 딸이 내 무릎 위에서 놀고 있다. 그녀의 손끝 아래서 늙은 여자들
의 메두사 같은 머리가 안식을 얻는다. 고생을 모르는 손은 그 뱀들을
만질 수 없다. 오직 그녀만이 뱀들이 노래 부르게 만들 수 있다.
숙이는 미장원 처녀다. 오래오래 묵은.
* 캣츠아이 : 묘안석, 또는 고양이눈이라 불리는 보석. 성분이 다른
물질을 자기 속에 받아들여 빛의 다발로 엮어내기 위해 오래 참은 보석
임.
[감상]
묘사가 인상적인 시입니다. 딸의 죽음과 그 죽음으로 인한 편린들이 그녀의 미장원의 삶을 뒷받침해줍니다. 또 나름대로 그 얼개는 시 전체를 이끌어가는 분위기에 충분히 기여하고 있고요. 가령 "그녀의 거울 속엔 지하실이 있고, 그 지하실 낡은 찬장 속엔 우리가 만들고 잊어버린 수많은 얼굴들이 있다"와 같은 문장은 상상력과 결부된 탁월한 시선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한번쯤 미장원에 가서 슬픈 눈을 가진 그곳 주인을 만났다면 더더욱 생각나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