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예(虹霓)」/ 위선환/ 《현대시》2004년 1월호
홍예
한 사람이 떠났다 한 물줄기를 데리고 갔다 물줄기가 따라간지 여
러 날째인데 한 사람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 겨드랑이 아래
거나 가랑이 아래거나 사람은 늘 아래가 쓸쓸하다 물줄기는 물길을
파며 아래로 흘러가고 한 사람은 거기 아래가 파인다
걸어가는 사람이 돌아보는 쪽이 이쪽일 것이므로 저쪽으로 걸어가
는 한 사람과 이쪽에 서 있는 한 사람이 쓸쓸할 것이므로
한 사람은 그 사이 멀리까지 걸어갔다 저무는 하늘에 물소리 흘러
가고 물굽이가 허옇게 비쳐 보이는 것을…, 한 사람이 길게 한 이름
을 부른다 쉰 목소리로 여러 번 부른다 메인 목소리로 몇 번 더 부
른다 사람의 아래가 마저 파이고, 허물어지면서 묻히면서, 묻히는
목소리로 또 부른다
[감상]
'홍예(虹霓)'란 무지개를 뜻합니다. 이 시는 '물줄기', '아래'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통해 세월의 흐름을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물길은 토사를 흘러내리게도 파이게도 하면서 지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사람은 늘 아래가 쓸쓸하다'라는 직관은 성적인 부분과 연관되면서 중의적인 느낌으로 와닿는군요. 무지개의 두 끝단에서 서로를 부르는 행위는 이승과 저승으로 연결된 어느 목소리가 아닐까 싶어, 고즈넉하게 쓸쓸이 깊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