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로> / 이동호/ 《다층》2005년 가을호
십자로
피가 철철 흘러내리듯 위에서부터
아랫방향으로 차들이 고여있다 신호등이
머금고 있던 핏물을 꿀꺽꿀꺽 삼키자
하늘이 파란 신호등을 켜놓는다
그 순간 차들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신호등의 핏물이 다시 고일 때까지
당분간 차들은 흘러내리는 것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맞은편으로 건너가기 위해 사람들이
횡단보도 앞에 못 박혀 있다
삶이 언제 박해 아닌 적 있었던가
얼굴마다 순례의 흔적, 주름살은
고뇌가 자라는 고비사막이다
네거리를 짊어지고 청소부가 오르막을
휘청거리며 오르고 있다
그의 머리 위로 햇살이 가시처럼 꽂힌다
그의 얼굴을 타고 차들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감상]
상상력을 통한 강렬한 묘사가 돋보이는 시입니다. <피>와 <십자가>의 상징처럼 이 시의 묘사는 이미 <청소부>로 가닿는 일정한 해석의 암묵적 결과를 보여줍니다. <피>라는 발화지점에서 움직이고 흐르며 고이고, 또 나아가는 것도 인상적이고요. <주름살>이 <고비사막>으로 되는 비유도 꼼꼼함과 스케일이 겸비된 통찰입니다. 고단한 일상의 가장 낮은 위치의 청소부를 구세주로 형상화한다는 점, 이처럼 시는 하나의 뜨거운 증언의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