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 안시아/ 《시와상상》2006년 가을호
킬러
그가 기르는 공포를 알고 있다 흙 묻은 날개가 풍경을 장전한다 한쪽 눈썹이 흠칫 치켜 올라가는 순간 허공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나뭇가지를 털며 새들이 날아오른다
그의 날개는 바람의 오차를 비껴나 중심을 거친다 퍼즐 한 조각이 풍경을 넘어뜨리고 박제된 눈알처럼 부릅, 죽음이 눈을 뜬다 꽉 다문 공기가 흩어진다 멈췄다, 다시 움직이는 시계바늘만이 그의 알리바이다
그는 뒷모습만 나타난다 검은 개가 물끄러미 한곳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점점 좁혀오는 하늘아래서 그가 길들여온 어둠을 본 적이 있다 그가 빠뜨린 시선 속으로 조준된 추락이 갇힌다 그는 어디에서나 사라진다
[감상]
<킬러>의 이미지에는 고요하고 쓸쓸한 배후가 느껴집니다. 저격수인 그는 늘 혼자서 활동하며 그가 겨누는 풍경은 모두 조준점 속으로 휩쓸려 들어갑니다. 이 시는 그런 팽팽한 긴장을 놓치지 않습니다. 일테면 그의 총알은 마음에서 몸의 방향이라기 보다는 몸에서 마음의 방향으로 날아갑니다. 그의 임무에 있어서는 증오나 연민의 형태는 없고 오직 표적의 중심에만 몰입됩니다. 그것이 <죽음>을 완성시키는 그의 <알리바이>이기 때문입니다. 2연이 인상적인데 시간까지 멈춘 아득한 무심의 경지와, 전반적 흐름에서 <킬러>로 파생되는 이미지의 강렬한 묘사가 깊이 있게 심화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