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산후병동 - 김미령

2006.09.27 16:33

윤성택 조회 수:1419 추천:216

<산후병동> / 김미령/ 《시와사상》 2006년 가을호


        산후병동

        창밖의 안테나가 바람에 흔들린다
        무른 생선 가시처럼 높고 가늘게 서서
        지나는 구름에 젖을 물리고 옷을 추스르지도 않고
        희부연 눈빛으로 마냥 어딘가를 바라본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가
        환한 밀실에서
        헝클어진 신음과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메스 위를 비켜가고
        링거병 질질 끌며 여자들이 복도를 걸어다닐 때
        밖에선 차들이 사람들이 빠른 물살처럼 지나갔다
        산후병동의 우뚝 정지한 시간 밖으로
        웃음소리와 기계의 잡음들이 돌아나가고
        마침내 수문을 열어 몸속을 흘려보낸 여자 하나가
        보낭을 안고 발을 헛디디듯 세상의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진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까무러칠 듯한 봄빛 속으로
        새벽 병실의 기침 소리 사이마다
        까무루룩 벚꽃은 꿈처럼 지고
        눈물은 거친 밤들을 적셔 한 시절을 잠시 잊게 한다

        병실 앞을 서성이던 축하객이 모두 빠져나가고
        나즉한 어둠이 찾아올 때면
        당직 간호사의 새벽 플래시 불빛을 숨죽이고 바라보며
        그녀는 울 것이다
        불빛이 더듬고 지나간 자리에 희미하게 고이는 것이
        천천히 고요를 회복하고 있는 시간의 서성임 같은 것임을
        그리고 부푼 배가 쓸쓸하던 그날이 그리워질 때쯤
        물 빠진 호수 바닥처럼 텅텅 그녀는 울 것이다


[감상]
아이가 태어나면 모든 조명은 그 아이에게로 비춰집니다. 물론 생명 탄생이라는 축복은 엄마의 몫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 시는 그런 밝은 모습 뒤 그림자처럼 깔려 있는 우울을 형상화해냅니다. 어머니가 되는 것에 대한 심리적 갈등, 혹은 호르몬에 대한 변화 등으로 겪는 불안의 이미지가 회색빛 사진처럼 인화된다고 할까요. 빠르고 각박하게 흘러가는 세상과 <우뚝 정지한 시간 밖>의 산후병동의 차이가 말해주듯, 그녀의 공허감과 상실감은 <고요를 회복>하기까지의 과정처럼 보입니다. <안테나>는 어딘가와 끊임없는 교신의 수단입니다. 1연 <안테나>와 <그녀>가 오버랩 되는 것은 SOS신호처럼 여성으로서, 生으로부터 진정한 실존과 통하고자하는 바램은 아닌지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51 꽃피는 만덕 고물상 - 권현형 [2] 2005.10.06 1458 221
950 교통사고 - 김기택 [4] 2005.06.14 1640 221
949 저물어가는 강마을에서 - 문태준 [1] 2005.05.06 1778 221
948 비렁뱅이 하느님 - 정우영 2004.03.16 1147 221
947 블랙박스 - 박해람 2003.12.08 1176 221
946 고가도로 아래 - 김언 2003.07.09 1079 221
945 너 아직 거기 있어? - 김충규 2002.06.15 1336 221
944 내 후생을 기억함 - 이성렬 2006.03.07 1730 220
943 섀도라이팅 - 여태천 2006.02.14 1307 220
942 겨울 저녁의 시 - 박주택 2005.11.12 1982 220
941 예수를 리메이크하다 - 문세정 2005.10.18 1505 220
940 풍림모텔 - 류외향 [1] 2005.08.08 1408 220
939 포레스트검프 - 문석암 [3] 2005.01.27 1331 220
938 그것이 사실일까 - 류수안 2004.10.13 1298 220
937 달의 눈물 - 함민복 [1] 2004.08.24 2187 220
936 후박나무가 있는 저녁 - 이영식 2003.07.29 1130 220
935 낡은 침대 - 박해람 [2] 2006.07.22 1918 219
934 내리막길의 푸른 습기 - 이승원 2006.05.12 1562 219
933 벽 - 유문호 [1] 2006.04.25 1786 219
932 천막 - 김수우 2005.09.24 1404 219